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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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었습니다. 몇 년 전 『그 남자네 집』이후론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보니 그동안 내 놓으신 단편들이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야 다시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게 되었네요. 선생의 위트가 살짝 엿보이는 제목의 이 책은 단편임에도 정말 잡자마자 숨도 안 쉬고 읽었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선생의 필력이 가히 대단하시어 존경의 눈빛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더군요. 엄마가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소설집이라고나 할까요. 박완서 선생이 우리나라에 계신다는 것이 송구한 말이지만 자랑스럽고 든든하답니다.^^;

『친절한 복희씨』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부분이 노인들이고요. 그래서인지 읽다보면 자꾸만 부모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촛불 밝힌 식탁」 할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서운한 일을 당하신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 엄마도 첫사랑 그 남자를 생각할 때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특히 「촛불 밝힌 식탁」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명히 마누라에게 잡혀서 마누라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뻔한 아들의 멍청한 처사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며느리 입장이 아닌 딸의 입장밖에 안 되어 본 터라 더 이야기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그렇지. 정말 자식 같은 것은 하나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대단한 밥상」에선 또 어떤가요? 부모의 마음을 보니, 부모란 전생에 자식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해서 맡게 되는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해요. 자식들 낳아, 먹이고 입히고 키워줬는데 돌아가시는 날 받아 놓고도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눈치 아닌 눈치를 보다니요. 정말 자식이라는 존재는 부모에게 무엇이기에;;;

해설을 하신 김병익 선생이 굳이 노년 문학이라고 가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박완서 선생의 글을 노년 문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어린이를 거쳐 청소년과 청년기, 중년까지 그 나름대로 그 세대를 경험하고, 겪어본 작가들은 능숙하게 글을 쓰지만 노년기는 겪어보질 않았으니 안다고 해도 얼마나 알겠어요. 그 나이 때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생생함이 전보다 못할 테니 노년 문학이라는 장르도 있기는 있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마음을 안다고 생색을 내지만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내가 알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의문입니다. 저도 부모의 나이가 되어봐야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말입니다. 선생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업작가라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본받아 오래오래 같이 늙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답니다.^^

박완서 선생은 사는 일에 진력이 나서 이 지루한 일상에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글을 썼다고 하셨습니다. 그 글들이 그렇게 선생을 위로해준 것처럼, 그래서 독자들 또한 위로받기를 바란 것처럼 저 역시 선생의 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수다와 무거운 이야기 속에 은근슬쩍 호호 웃으시며 웃음을 전해주시는 노련한 필력에 얼마나 감동이 느꼈는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달라고 조르고 싶습니다. 어쩐지 박완서 선생님은 그렇게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처럼.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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