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이 『달려라 아비』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그땐 나만 놀란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놀라워했었다. 자고로 문학상이란 왠지 나이가 듬직한 분들이 받아야 하는 상인데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출내기 작가가 문학상을 받았으니. 그러나 그 놀라움은 김애란의 책을 읽었을 때 더했다. 문학상을 받은 책들은 하나같이 좀 어렵다. 그에 반해 김애란의 책은 쉬웠다. 술술 읽혔었고, 다시 한번 김애란의 경력을 쳐다보게 했다.

김애란의 문체는 쉽다. 어렵지 않고 술술 넘어 간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한번씩 들은 이야기 같은, 꼭 내 친구 이야기를 듣는 듯, 내 일기장을 읽는 듯 하다. 이 책 『침이 고인다』도 그렇다. <다시, 김애란이다>이란 광고 문언처럼 정말 다시, 김애란이다.

김애란이 말하는 '20대'는 궁핍하다. 그 나이 때면 경험하는 사랑이나 신데렐라적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철저하게 절실하고 궁핍한 20대가 존재한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재수생', 변두리 학원 강사를 맡고 있는 '강사' 직장을 가지지 못한 '백수' 등등 비루한 인생들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평범하게 소시민으로 살아온 내게 그의 이야기 속 모든 이야기가 내 안으로 슬며시 스며든다.

살면서 한 번은 원하지 않는 방문객의 장기 체제로 처음엔 외로움에 거절하지 못하고 허락을 했다가 결국에는 상대방의 모든 것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침이 고인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쉴 틈 없이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부엌에서 이런저런 것을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새끼답게 엄마가 바쁘다는 걸 뻔히 알면서 방바닥에 자빠져 티브이나 보거나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잔소리를 해대는 '내'가 어찌나 생생하던지 눈물이 찔끔났다(칼국수). 또 서울이라는 생경한 곳에 혼자 올라와  한 때 머물고, 그 어는 곳에서 만났던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추억들이 김애란의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지나가고 있는 중'임을 느끼게 하던「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그 옛날, '그때 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때면 김애란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쓸쓸해진다.' 는 말이 꼭 내 생각처럼 들어 맞아 다른 사람들도 다 나 같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이 책『침이 고인다』에서는 엄마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김애란이 말하는 그 '엄마'들은 나의 엄마이기도 하다. 궁핍하고 쓸쓸한 현실 공간에서 추억하는 엄마와 나의 존재는 야생적인 엄마의 힘에서 자라고, 집 나가 정부와 죽어버린 엄마의 존재조차 모르는 소녀에겐 애틋한 모성애를 보여주며(플라이데이터리코더), 미로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나프탈렌 냄새나는 그 마당에선 거침없는 엄마의 모성애를(네모난 자리들) 보여준다.

그러나, 김애란의 단편들은 그 비루함과 쓸쓸함들이 너무나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지루함을 느낀다. 요즘 20대들은 다 이런가? 싶기도 하고, 긍정적인 김애란의 문체임에도 씁쓸함이 느껴져 기운이 없어진다. 에이 뭐야! 인생이 뭐 이래? 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하나의 단편들을 읽을 때마다 그 쓸쓸함이 내 것처럼 다가오는 것에 고개 돌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그런 상황에도 꿈과 희망을 보여준 김애란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