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읽을 책을 고를 때 나는, 겉모습을 잘 본다. 디자인이 내 마음에 드는지 혹은 제목이 마음에 드는지. 다르게 생각하면 제 눈에 안경이라고 각자의 취향 문제이겠지만 아무튼 예쁜 책이 좋고 멋진 제목에 우선 눈이 간다. 그래서 이 책 수산나 타마로의 『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를 처음 봤을 때 읽기가 싫었다. 작가 소개에서 본『마음 가는대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수산나 타마로란 낯선 이름과 살짝 칙칙한 표지의 색이 내겐 알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느 구석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는데…(물론 그 반대의 경우에 낭패를 본 경우도 한두 번은 아니지만 말이다.) 외출할 때 우연히 들고 나갔다가 두어 페이지 읽다 보니 내가 얼마나 멍청한 선입견을 가지고 사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산나 타마로의 문체는 굉장히 냉소적이면서 한 편으론 굉장히 감성적이다. ‘자기 아내와 아들의 머리를 깨부수지 않기 위해 접시를 깨고 의자를 망가뜨리는‘ 아버지의 행동을 갈매기에 비유하고, 아버지가 정말 좋아할 만한 이야기라며 던지는 미국 소년의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문체에서 발테르의 숨어 있는 분노와 아버지를 향한 냉소를 느끼게 한다. 반면에 오르사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어떤 사랑보다 위대하고 영원할 것이라 확신할 만큼 자신에 차 있고 감성적이다. 이런 수산나 타마로의 문체는 묘하게 나를 끌어당기더니 급기야 그 글에 빠져들게 했다.

참을성이 없고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로 인해 공포 속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발테르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어머니의 보호자이며 어머니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로 알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고, 터무니없으며 비이성적이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공범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공격한다. 또 불면증을 없애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하시시를 피운다. 결국 발테르는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부랑청소년들을 수용하는 곳에서 유일한 친구인 안드레아를 만나게 되고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용소를 나와 성년이 되었을 때 발테르는 미련 없이 집을 나온다.

이 책의 대부분은 발테르라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알콜 중독에,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세상엔 어머니밖에 없다고 믿던 아들이 그래도 남편인 아버지 편을 드는 엄마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비뚤어져 가는 발테르의 인생을 담았다. 사실 발테르의 인생은 그 후로 어느 것 하나 풀리는 일이 없다. 집을 나와 죽어라 고생하며 노력은 하지만 제대로 된 직장도 잡을 수 없었고,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믿고 덤벼보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데다 사랑 역시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의 삶은 하나 같이 실패한 삶이었던 거다. 그런 깨달음 속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 실패한 몸으로 찾아가기 싫은 고향에,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임종을 앞둔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 안드레아의 편지를 읽게 된다.

수산나 타마로는 발테르와 안드레아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 남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안드레아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 안드레아의 죽음으로 발테르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어느 순간 발테르가 버린 그 자신으로 인해 겪어온 그의 삶은 길고 긴 혼란의 세월을 거쳐 결국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없애고서야 혼란에서 벗어나게 된다. 부모에게 사랑과 이해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인간들이 동물을 죽이고 싶어하는 것은 동물이 지닌 본연 그대로의 은총을 질투하기 때문이지.” (p356)

이제 내 자신을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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