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공포특급'이라는 소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은근히 조여 오는 공포들에 오싹함을 느끼곤 했는데 이 책 『벽장 속의 치요』를 읽으면서 그 오싹함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유령이나 영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찌된 일인지 멀쩡한 인간들이 더 무섭다는 점이다.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면 괜히 겁부터 나는 유령들보다 본성을 꼭꼭 숨겨 놓은 채 서서히 드러내는 인간은 정말 이 세상 아니 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한다.

벽장 속에 숨어 있으면서도 귀여운 유령 치요(벽장 속의 치요)나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길 바라며 언니 앞에 나타나는 야요이(어두운 나무 그늘), 자기 아내와 친한 친구가 결혼해주길 바라며 그들을 지켜보는 영혼(Call)은 인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골탕 먹이는 며느리는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해도 복수하듯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괴롭히는 것은 정당화 될 수는 없다.(냉혹한 간병인) 또 어린 사촌을 욕보인 후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그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비밀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을까?(어두운 나무 그늘) 17년을 같이 산 부부는 어떤가? 그 오랜 세월을 한 이불 덮고 살아왔으면서 서로 죽이겠다고 독이 든 음식을 갖다 바치는 부부(살인 레시피)는 그야말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짐승만도 못한, 아니 귀신만도 못한 최하의 인간인 것이다. 홧김에 애인을 죽여 버리고 벌어지는 웃지못할 코미디 같은 상황(예기치 못한 방문자)은 그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령도 짐승도 하지 않은 짓을 유독 인간만이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증오한다. 그래서 유령의 이야기보다는 인간의 이야기가 더 공포스럽고 잔혹하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광고 문언에 나온 것처럼 '당신은 이 소설을 두 번 읽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기막히게 들어맞은 「Call」이었다. '절묘한 서술 트릭의 묘미'를 보여준 이 작품은 두 번 읽고도 모자라 세 번을 읽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렸을 정도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이었고, 단편이었지만 펑키호러라고 그냥 재미삼아 읽어버리고 말 그런 책이 아니라 잔혹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간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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