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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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에 대한 편애하는 마음은 제쳐 두고라도 김연수의 이 작품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작품이다. 계간지 『문학동네』에서 2005년 겨울「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1회분을 보았었다. 그때의 짜릿함이란~! 그러나 봄을 어떻게 기다린단 말인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넘어갈 지경이었지만 그 연재분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건 내게 고통이었다.(헉! 정말?) 그래서 나는 1회분을 끝으로 읽지 않았다.^^; 장편이란, 자고로 그 자리에서 끝이 나야 속이 시원한 성격이니 그냥 취향이라고 말하련다. 아무튼 그 후로 내내 나는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렸으니 "이유 없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보다 누군가를 그리워서 외로움에 시달리는 편이 훨씬 낫다."는 '나'의 독백처럼(쌩뚱맞은 비유지만;;) 그만큼 궁금해 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린 작품이었다. 연재하는 동안 마니아가 유별나게 뚜렷한 작가의 독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날 만큼 난 상태라 읽지도 못하고 궁금해 하며 소외된 듯한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드디어 이 책을 받아들고 읽게 되었을 때 나의 심정은 그 '그리움의 본질'이 체온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온기의 결여'처럼 따뜻해졌다고나 할까?(아, 나의 편애는 내가 봐도 좀 심한 듯하나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고도 그런 마음을 안 가진 다는 것은…. 재미있다. 정말!^^)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p384)

김연수의 신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많은 삶들이 존재한다. 그 삶들이 정민과 '내'가 "더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게 된다면, 우리 둘의 관계는 그 순간 끊어질 것 같은" 것처럼 끝없이, 끝없이 전개된다. 나, 정민, 나의 할아버지, 정민의 외할머니와 삼촌, 이길용 혹은 강시우,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칼 하프너이며 헬무트 베르크 그리고 안젤라와 안나까지. 그 '우연한 존재'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삶들을 읽다 보면 제목처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는 존재" 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기억이 기억을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며, 그 삶이 진실인지 꿈인지 또는 지어낸 거짓말인지 알 수 없어도 말이다.

또 김연수는 80년대의 끄트머리 학번으로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지나온 역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어쩌면 그런 일이 있었기나 했어? 하는 생각이 들만큼 꿈속 같은 일들을 말이다. 1980년대식 사랑, 증오, 복수, 죄의식, 연민까지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삶들이 "지난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듯이 이미 늦었음을 알면서도 하나의 진실을 찾아 끝없이 헤맨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지나온 역사에 대한 되풀이 된 이야기,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미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그의 독특한 연애화법과 문체에 '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는 왜 연애소설을 쓰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닭살 돋을 만큼 감정 풍부한 이 책에 나오는 연애사들을 읽노라면 내가 여태 해 온 연애들은 우스울 정도다. 연애란 이런 것이다 하고 내려주는 지침서 마냥 작가가 내 보이는 대사들은 낯간지럽다. '나'와 정민의 그 살가운 표현들, 가령, 삼촌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던 정민이 뜬금없이 "마치 네가 나를 만나러 올 때면 늘 그렇듯이, 번개처럼. 나를 만나러 올 때는 항상 그렇게 달려와, 알았지? 그때는 정말 사랑받는 느낌이거든" 하며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나, 화장을 한 정민에게 양 볼을 좀 빨갛게 하면 더 예쁠 거라는 '나'의 말에 "그건 화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고, 네가 나를 좀 부끄럽게 만들면 되는 거야" 같은 표현들 말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만 정말이지 그 어느 연애소설 못지않다. 어디 그 뿐인가? 칼 하프너가 안나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는 어떤가? "I Love You"라는 단어를 여덟 번이나 반복한 이유로 이틀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어야만 했다던 캠프. 마지막 편지에 자신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안나 당신 때문이었다며 써 내려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그 시대의 희생자이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람, 그 누구의 슬픔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강시우, 아니 그 이전의 삶 속에 등장했던 이길용과 상희의 사랑이야기마저 연애란 자고로 이렇게 해야지 하는 것 같다. 그런 연애이야기가 전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삶의 의미들 속에 그들이 하는 그 연애야말로 유일하게 '진실'된 이야기임을 알게 해주기도 한다.

김연수는 작가의 전작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에서도 방대한 분량의 참고서를 읽은 듯하다. 이미 공부하듯 찾아내는 폭넓은 자료들의 재미에 맛들인 독자라면 그가 이 작품에서 풀어 놓는 또다른 이야기에 넘어갈 것이다. 카뮈나 황지우, 칼 마르크스와 모택동 같은 알만 한 사람들의 짧은 인용문들은 둘째치고라도 아우슈비츠, 히로뽕(제작과정까지!), 1945년 4월 혼란스러웠던 베를린의 상황, 타밀호랑이 그리고 이 모든 우연한 일의 시발점이 된 피에르 루이스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저절로 머릿속에 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사하고 연구하여 그것을 작가의 글에 적절하게 인용하는 그의 재주(?)를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하여 독자들의 지적허영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개인의 작은 경험들로 이루어져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운명과 사랑과 배신, 복수와 좌절,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살다보면 한 개인의 삶은 그 자신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고문으로 인해서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떤 추억으로 인해서든 말이다. 한 개인의 삶이 그러한데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그 얼마나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할 것인가? 그럼에도 안도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그 삶을 기억해 주는 사물들, 입체누드사진, 해진 청바지, 낡은 잡지, 손 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케이스,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그리고 감포의 물회, 생일의 유도후와 토요일 오후의 된장찌개가 있음으로 진실이 말해질 수 없음에도 무엇이 진실인지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게 끝이 난다고 해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 그리하여 커다랗고 하얗고 넓은 침대로 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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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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