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공포를 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를 가리켜 공포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그의 소설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귀신이 나온다거나 엽기적인 살인마 같은, 보이는 것만으로 공포를 조성하지 않는다. 너무나 태연스럽게 소름을 돋게 하고 오싹하게 만드는 소설, 그래서 더 무섭고 바로 옆에서 벌어질 것 같은 소설, 그 리얼함이 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이다. 

편혜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사육장 쪽으로』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생각났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현실에서,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첫 번째 단편인 「소풍」, 바쁜 삶 속에서 우연히 잡힌 여행의 계획은 즐거움에 들뜸과 동시에 시야 가득 내려앉은 안개로 불길함을 느끼게 한다. 그 불길함은 소리 없이 다가와 오래된 지도와 당겨진 앞좌석으로 불편함을 만들더니 남자가 정한 W시로의 여행시간에 멀미약을 챙겨 먹지 않은 여자를 드디어 불안하게 한다. 급기야 챙기지 못한 멀미약이 그들의 묘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들. 여행은 즐거운 것이고 떠난다는 것 자체로 행복해야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낀 안개는 여행이 결코 생각처럼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표제작인 「사육장 쪽으로」도 그렇다. 단독주택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한 대출을 받아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허세 부리듯 이사를 간 그는 개 사육장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사를 꺼리는 아내를 설득한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난 그 전원주택에서의 삶은 그가 꿈꾸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어디서 들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개소리와 파산해버려 집행을 알리는 통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럭의 등장은 뒤이어 있을 사건의 전초였을 뿐이다. 「소풍」에서 보았던 그 묘한 불길함처럼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그 불확실함 속에서 일어나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가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불안함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에는 힘없고 삶에 지친 남자들이 나온다. 나름대로 각자의 삶이 고단한 네 명의 남자(금요일 밤의 안부인사), 허세로 인해 파산을 당한 남자(사육장 쪽으로), 문화재 보호로 인해 마음대로 집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사는 남자는 아내에게 맞기까지 한다(밤의 공사). 또 승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맡아야 하는 남자(분실물) 등등 하나 같이 현실의 삶이 고통 그 자체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들의 현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끔찍하고 섬뜩하며 악몽이고 그들의 미래는 안개로 가득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이런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마음이 많이 불편해진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에 감동하는 것도 현실의 그런 불편한 마음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편혜영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인간 세계의 현실이 아직은, 그래도 살 만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비록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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