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노 강 산타 트리니타 다리 아래쪽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루카 살리에리라는 스물아홉 살의 남자였고, 이틀 전에 그의 연인 안나 모란테가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프랑스 소설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지만 간혹,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건 아마 문화적으로 정서가 달라서이겠지.

여기 한 남자가 죽었다. 그 남자에겐 연인인 여자가 있다. 그러나 그 연인이 모르는 또 다른 남자가 한 명 있다.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관계가 무슨 관계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소설 좋아하는 나 역시 미리 알아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이 책이 여기서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그랬다면 프랑스의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 후보작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입장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재미있는 것은 죽은 루카가 첫 번째 화자로 나온다는 거다. 뒤이어 안나와 레오가 바통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죽었으므로 이야기의 전개는 죽은 루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부모님과 연인인 안나, 그리고……. 여기서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안나 밖에 없다. 나중에 그 진실을 알게 되지만 과연 제대로 알게 된 진실일까?

내가 견뎌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레오 베르티나는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루카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다시 한 번 불균형. 다른 취급. 레오 베르티나는 알 권리가 있었고, 나는 우롱당하는 역할이다.

이 사실은 어떤 대지진을 예고하는가?  <p210>

『이런 사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독백 형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깔끔한 문체'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문체가 글과 너무나 딱 맞아떨어지니 화자들이 겪는 고통이 그 나름대로 모두 공감이 간다.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는 금방금방 바뀌는 화자들처럼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안나의 입장에서 안나를 이해하다보면 사랑하던 연인의 죽음과 배신에 쉽게 감정이입하여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안나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한 번 칼을 꽂아야 한다. 그러는 김에 나에게도.   <p184>

필립 베송은 '내 작품들은 거의가 내면의 독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은 등장인물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며 외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라고 했다. 이 소설은 스토리상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너무나 뻔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쉽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그들의 고통과 상실감이 제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길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도 뚜렷이 드러나는 '내면의 독백', 그래서 필립 베송의 말처럼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독백에 빠져 주변의 모든 상황은 정지되고 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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