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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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백가흠이란 작가에 대해 처음 알았다. 등단 한지 벌써 6년이 지난 작가임에도 그의 존재조차 몰랐음에 스스로 놀라워했지만 아마 알았어도 나는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 지난번 은희경 작가의 강연회에서 사회를 맡은 백가흠 작가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받은 느낌은 모범생 같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한 작가가 쓴 소설이 온통 신문 사회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새 소설집이 나온다고 하기에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다행이라면 전작에 대한 이야기와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었다는 점이다.

 세상은 늘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믿는 것,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이 사실로 느껴진다. 그래서 TV에서 보여주는 고발성 프로그램이나 현장 취재 같은 프로그램을 접할 때마다 과연, 저런 세계가 존재한단 말인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은 일이란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남자와 헤어지지 못해 애를 태우고, 집 청소는 뒤로 한 채 쓰레기 같은 곳에서 생활을 하거나, 장애가 있다고 아이를 감금하다시피 키우는 부모들 등등.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을 TV에서 보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딴엔 얼굴을 찌푸리고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저런 미친 놈! 이나 저게 엄마야? 따위의 욕이나 해댈 뿐. 

지난주에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기리노 나쓰오가 누군가? 불편하고 괴기스런, 다르게 이야기 하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작가다. 백가흠의 소설을 읽으니 문득 기리노 나쓰오가 생각났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내보이고, 우리가 모르는 저편의 삶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아무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 일들을 태연스레 끄집어내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고통 받게 하는 것이 꼭 닮았다. 나는 가능하면 우울한 이야기를 읽은 뒤엔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편이다. 책에 몰입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 어찌하여 한 주 내도록 조금 우울하고 찝찝한 이야기들만 읽었다. 욕이 나오지만 한쪽 구석에선 마음이 싸해진다. 세상이 뭐 이래? 저런 인간들이 있단 말야. 정말? - - 각설하고,

모두 아홉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조대리의 트렁크』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아니, 정상적이란 말은 나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낯선 그 세계를 훔쳐보는 재미는 관음증에 걸린 사람마냥 떨렸으며, 그 재미에 빠지니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 같다. 집착함과 완전한 소유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라 착각하고(굿바이 투 로맨스), 우연히 만난 한 소녀에게 늙은 노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고(매일 기다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사고, 아이를 감금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는 그녀들(웰컴, 마미!),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는 모텔의 옷장 속에 숨어 엿듣고, 엿보고, 또다른 어린 부모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다(웰컴, 베이비!).

또, 군대에서 다리가 찢어져 불구가 된 청년의 생존 문제(루시의 연인)나, 의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도 결혼에 실패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P의 인생이나(로망의 법칙), 사업에 실패한 남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한 행동과 아픈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조대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조대리의 트렁크) 장애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의 삶조차도 파헤쳐 알고 보면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끔, 소설보다 현실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약한 자는 끝없이 강한 자의 노리개가 되고, 살아 낼 희망이 사라진 상황은 늘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한다. 아무 죄의식 없이 일을 저지르고 잘못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데도 우리는 모른 척 하며 살아 간다. 그래야 내 삶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그외는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써 생각해 낸 것이라곤 이건 소설이잖아. 라는 회피 뿐이다. 엽기적이라면 엽기적일 수 있는, 그러나 너무나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들을 태연스레 써 낸 백가흠 작가, 너무도 반듯하게 생긴 그가 남들이 다 피하고 다니는 문제를 이야기 삼아 글을 쓴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이 다하지 않고, 영원히 그들과 그녀들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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