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아르토 파실린나의 책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책은 『기발한 자살여행』이다. 작년 초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우리나라에도 ‘자살’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특정한 관계도 아니면서 오로지 ‘자살’을 위해 모여 같이 자살하기도 하고, 자살사이트에서는 자살을 위한 방법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아직까지 그런 사이트가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저런 이유로 ‘자살’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던 그런 때였다. 그래서일까? 핀란드라는 나라의 소설이라는 것도 특이한데, 책 제목까지 독특하여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걸까? 궁금해 하며 읽었다. 처음 블랙유머로 가득한 그 책을 읽으며 웃음이 나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문화에 한참 어이없어 했다. 더구나 핀란드 인들의 이름이 어찌나 독특한지 자살여행에 참여한 신청자들의 이름이 헷갈려서 무지 힘들었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에 ‘아르토 파실린나’란 이름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켜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 『토끼와 함께한 그해』를 펼쳤을 땐, 이미 파실린나의 유머와 위트를 각오한 참이었다. 또 어떤 엉뚱한 이야기로 날 즐겁고 어이없게 할 것인가? 하는 기대부터 했다나. 역시, 기발하다. 핀란드라는 나라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도 포함이 되겠지만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은근한 웃음을 자아낸다니.

『기발한 자살여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이 책에서도 여행을 한다. 하지만 동반자는 사람이 아닌 토끼다. 전작의 경우 많은 사람들과 이 나라 저 나라로 자살하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참가한 여행자들의 사연을 풀어낸 것이라고 하면, 이 책은 토끼와 함께 핀란드의 북쪽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즐겁게, 혹은 황당하게 풀어냈다. 작가 소개에 보면 파실린나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전에 벌목 인부를 비롯해 농사꾼, 고기잡이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선 신문사와 편집인으로서 활동을 했다고 나오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경험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의 주인공 카를로 바타넨은 40대의 신문기자이다. 한여름의 출장은 바타넨과 동료인 카메라맨을 지치게 했고,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 펼쳐지는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경 따윈 관심도 없었다. 두 사람 다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절망한 남편들이었고, 두 사람은 별 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인 상태라 아름다운 저녁 길을 차로 달렸지만 고통스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어린 토끼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서 몸을 일으켰고, 운전 중이던 카메라맨은 작은 물체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놀란 토끼는 앞 유리에 부딪치고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기자는 토끼가 걱정되어 숲으로 가고, 카메라맨은 이곳에서 지체하면 헬싱키로 가지 못한다며 신경질을 내며 기자에게 돌아오라 소릴 지르다가 혼자서 가 버린다. 다리가 부러진 토끼를 본 기자는 토끼를 안은 채 시냇가에 앉아 어찌하여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다가 이젠 혼자서 국도로 내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타넨의 진짜 마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심술궂은 아내도, 그럴 듯 해보이기만 하는 직장도, 비싼 헬싱키의 집세도 다 잊어버리고 토끼와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행에서 바타넨은 주거침입자로 몰리기도 하고, 산불에 휩싸여 진화에 참가하기도 한다. 또 시체와 밤을 새기도 하고, 외무부 만찬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교회에서 토끼를 본 목사가 토끼를 잡기위해 벌이는 행동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였는데, 파실린나의 유머가 엿보이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산장에 침입한 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몇 날 며칠 설원을 헤매다가 국경을 넘은 지도 모르고 소련 땅으로 들어가 체포를 당한다. 그곳에서 그는 2개월의 감방 생활을 마친 후 헬싱키로 이송되는데 바타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토끼와 여행을 하면서 지나온 지역들에서 올라온 22가지의 어이없는 범죄(?) 혐의였다. 그러나….

이 책은 한마디로 삶에 찌든 한 평범한 40대의 직장인이 집과 회사, 그리고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탈출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벗을 삼아 살아갈 때 비로소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더불어 현실을 비판하는 수고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능청스레 파실린나가 풀어 놓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비록 범죄자(?)로 몰릴망정 나도 바타넨과 함께 핀란드의 풍경을 맛보며 자연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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