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게 뭔데? 낮은산 키큰나무 4
베르트랑 페리에 지음, 이선주 옮김, 조승연 그림 / 낮은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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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그렇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에 대한 애착도 그다지 없지만 자식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부모는 딱 질색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너도 애 낳아서 길러봐라 소리치는 것은 예사 라고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소리 지르고 때려서는 가르치지 못한다. 그런 것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 자신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책 없이 아이부터 낳는 어른들이 싫다. 어쩌면 그래서 난 아직도 혼자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다면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또 눈길이 가니 어쩔 수 없다. 입에서 욕이 나오면서도 읽는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혹시 내가 어릴 때 부모에게 맞고 자랐나?(- -) 아,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학교 다닐 때 선생에게 맞은 기억은 나는데 결코 부모에게 맞은 적은;;; 그런데 왜 이런 책에 호기심이 많은 걸까?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아이도 없는데, 유독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아이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어른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냥 무조건 말이다.

『행복, 그게 뭔데?』 제목만 보아도 내용이 짐작될 정도다. 더구나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어딘가를 치려하는 큰 주먹과 주먹에 비해 너무나 작은 아이가 두려운 눈길로 내려오는 주먹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은 온통 빨간색이다.

아버지를 ‘때리는 자’라고 지칭하고, 어머니를 ‘옆 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이. 얼마나 무섭고 슬프면 ‘통로가 수없이 나 있는 큰 건물 안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이야기 할까. 아이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가족관계가 끝났다고 말한다. 아니, 가족이라고 이어주던 그 뭔가도 사실은 애정이라곤 조금도 없었다고 말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저녁, 때리는 자, 옆 사람과 함께 연못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 저 위의 달을 바라보면서, 나중에 저기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러라거나, 안 된다거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내 구석에 틀어박혀서 아예 달을 잊어버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p43>

아이는 부모에게 맞는다. 부모는 이유가 있지만 아이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만 그러고 사는 건지, 다른 아이들도 맞고 사는 건지조차도 모른다. 때리면 맞고, 맞아서 아프면 운다. 그리고 부모의 한탄은 늘 똑같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작가가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실화와 다름없다. 텔레비전 폭로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던 아이와 엄마와 아버지다. 어쩌면 내 주변에도 있을지 모르는 아이다. 혼이 날까봐, 그래서 또 맞을까봐 겁이 나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는 그런 아이 말이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캄캄하고도 끔찍한 자포자기 상태에 있다. 그건 나쁘다. 그래, 나쁘다.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약간 뒤로 물러나 사건들을 바라보아야 하고 재미도 곁들여야 한다. 하도 많은 청소년들이 절망해 있다 보니 흥미를 일으켜 줘야 하는 것이다. 있잖아 있잖아……요렇고 저렇고……알록달록 요란스런 말들. 강인하면서도 괴짜! 솔직히 말해 나도 그러고 싶다. 흥미로운 녀석인 척해 보이기. 뭔가 폼이 나는, 잘생기진 않았는데 그래도 뭔가 아주 괴짜!
그렇게 못할 것도 없지 뭐.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바로 그래서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그런 척일 뿐이니까. 웃음은 지나가 버리지만, 암흑은 그렇지 않다. 암흑은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바로 암흑 깊숙한 곳에 있고, 그곳에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p76>

세상엔 다양한 부모들이 있다. 아이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는 부모가 있는 가하면(하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마음을 다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아이를 사랑한다지만 과연,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인가 싶은 부모도 있다. 또 어른이라고, 아이보다 강자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복종하게 하고, 억누르며 가르치려 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라고, 다 제대로 된 부모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는 끝을 해피엔드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 몫인 것이다. 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오후 3시 베이커리』(소년한길)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맞고 살지만 긍정적인 아이 장훈, 제대로 된 가정은 아니지만 그 관계를 묵묵히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아이 상윤, 이야기는 다르지만 따뜻함이 번져오는 그 책과 따뜻함은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화가 나는 이 책은 그렇지만 둘다 나름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때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 그게 뭔데?』의 아이.  ‘정답은 없다. 정답 대신 엄청난 슬픔이 밀려온다. 너무나 선명한 슬픔.’ 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그럼에도 해줄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암흑 속에서 꺼내『오후 3시 베이커리』의 바이러스를 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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