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인문 서적 중에서도 역사는 꽤 흥미롭다. 예전에야 역사라고 하면 기껏해야 '조선왕조실록'이나 알았던 것 같은데 요즘 나오는 역사책들을 보면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때부터 역사에는 관심이 있었어되 그다지 성적을 못 낸 것을 보면 나는 위인이나 도움이 될 만한 역사 서적들 보다는 야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몇 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다양한 역사 관련 책들은 거의 대부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무래도 500년이라는 조선의 긴 역사와 그 이전의 시대보다는 내려오는 문헌들이 훨씬 많이 있음으로 인해서 일 것이다. 역사 소설이 아니면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들이라고 해봐야 '왕조실록'이나 '위인전'따위만 읽었던 탓에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 사건』을 읽었을 때의 쾌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실 내가 역사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순전히 이덕일 덕분인 것 같다. 그의 책을 읽은 후부터 조선이라는 시대, 우리가 아는 사실 말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에 관심이 갔으니 말이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안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역사책은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후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에 『엽기 조선왕조실록』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엽기'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식의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다들 알 것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엽기적인' 생각을 넣어 위트와 유머가 가득하였는데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역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흥미롭지 않은 책이었을 거다. 나도 역사라고 하면 뭔가 박진감 있고, 무거움이 가득한 걸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기록이 될 만한 사건들은 모두 진지함을 갖춘 일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요즘 나오는 역사 책들이 다양해졌고, 그 다양함은 그만큼 역사 관련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니 어떤 식으로든 왜곡만 되지 않다면 많이 나와 주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서론이 길었는데...아무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은 보수적인 조선시대에서 연애사건을 일어났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워 읽게 되었다. 물론 날로 세련되어가는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확 끌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개나리빛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들어올리며 살포시 웃는 여인네의 모습은 '날 보고도 이 책을 안 읽겠소? '하고 유혹하는 듯하여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확! 끌리게 되었다면 거짓말이고;; 왕비나 후궁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왕권을 둘러싼 암투를 그린 이야기도 아니고 '사랑'이라고 하니 아니 끌릴 수 없었다. 
조선시대가 어떤 사회던가? 신분이 뚜렷하고, 남녀가 유별하던 시대가 아니던가? 연애는커녕 결혼마저도 상대방의 얼굴 한번 못보고 하던 시대인데 연애사건이라니! 이 책에는 '신분과 시대를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연애사건'들이 들어있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어찌나 놀라운지 그들과 내가 혹시 시대를 바꿔 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왕조 스캔들에서 시작하여 조선을 뒤흔들만큼 요란했던 남녀들의 이야기와  불멸의 로맨스까지 다루고 있다.  지체나 신분이 높을수록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사랑이라는 걸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양인 여자들은 내실에 기거하면서 출입을 제한받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간음사건은 거의 근친을 상대로 발생했다고 한다.  세조의 후궁이었던 덕중이 시조카에게 연서를 보내어 들킨 일이나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의 첩과 연분이 난 광해군 때의 문신, 언니의 아들인 조카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던 성종 때의 구씨 부인이 그러하다.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독수공방 긴긴세월을 홀로 보냈을 후궁들이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사대부의 여인들은 그 외로움 달랠 길이 없으니 비교적 얼굴을 볼 수 있고 마주 대할 수 있었던 근친들에게 연정을 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시대가 시대인만큼 조선시대 연애사건의 최대의 피해자는 여인이었다. 미혼인 여인이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간통에 속했고, 여자는 이혼이나 재가도 힘들었다. 그러한 시대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자유롭게 산 여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죽음을 각오하고 천민을 사랑하다가 조정에 의해 강제 이혼 당하고 왜인에게 시집가는 수모를 겪고 결국에는 죽임을 당했던 가이, 자유연애를 꿈꾸고 스스로 남편감을 골랐던 규방 부인,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어을우동은 일부종사를 거부하고 자유를 택한 여인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여인들은 자유연애라는 사대부의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저질렀기에 참혹한 최후를 당했다. 생각해보면 현대에 살고 있는 나도 그들의 자유연애 만큼 자유롭게 행동하지 않으니 그들의 행동은 자유연애를 꿈꾸어서라기보다는 시대가 주는 억압과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제도로 인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가하면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 연애사건도 있었다. 한국판 윈즈공과 심프슨 부인이라 할 수 있는 양녕대군과 어리의 사랑이다. 호방하고 풍류기질이 있었던 양녕대군이 어리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태종이 어리를 축출할 때는 극렬하게 반항을 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태종의 미움을 받아 세자 자리를 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삼의당 김씨 부부만큼 행복한 부부들도 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 사랑의 시를 주고받으며 평생을 해로하며 살았는데 그 부부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사랑으로 감동적이다. 특히 첫날밤에 그 둘이 주고받은 시를 보면 그들 미래의 행복이  보이는 듯했다. 또 비천한 기생 신분으로 열녀문을 하사 받은 일선의 이야기는 비록 자유로운 연애를 할 수 없는 조선시대이지만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남녀상열지사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억압을 받는 시절이라 해도 신분과 금지된 사랑이 가로 막고 있어도 말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다른 조선시대의 모습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sdgghhhcff 2007-08-0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눈여겨 보고 있던 책이에요^_^
서평 잘 보고 갑니다. ㅎ

readersu 2007-08-07 11: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재미있답니다. 기회가 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