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바다에 빠지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 ㅣ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2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작년에 친구 덕분에 신년음악회를 간 적이 있었다. 금난새 선생의 지휘로 음악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 멋진 시간이었다.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제대로 아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클래식에 심취한 적도 없고, 호기심에 소품 정도는 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게 나로서는 클래식과 맺은 인연의 전부인 셈이다. 클래식엔 정말 무지한 편인지 아무리 들어도 제목을 외우질 못한다. 곡을 들으면 분명 들어본, 내가 아는 음악인데 제목을 말하라 하면 머뭇거리고 만다. 그래서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악기 다루는 사람이고, 클래식에 능통한 사람이다. 물론 그 능통한 사람이 내게 아무리 클래식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뭔소리인고? 할 테지만 그래도.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는 그런 내게 지적 호기심을 가득 채워주었다. 많이 들어본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이름조차 몰랐던 음악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그들을 알았으니 이젠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남았다. 작곡을 하든지 연주를 하든지 음악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 같이 다른 일보다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 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던 거다.

어린 드보르작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푸줏간 일을 하기 싫어 면허증을 땄음에도 외삼촌과 끈질기게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엔 음악가의 길로 간 것은 재능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드보르작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가 있었는데 바로 브루크너의 어머니다. 브루크너는 가난한 교사의 아들이었다. 13세 때 아버지를 여위고 집안 살림이 넉넉지 못하여 집 근처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마을 무도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 아들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어머니가 수도원으로 보내 소년 성가대가 된 후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브루크너의 재능이 알려진 것은 린츠 대성당 ‘돔’의 전속 오르가니스트가 되면서 부터다. 동작이 굼뜬 촌티나는 오르가니스트의 연주는 실로 대단하여 듣는 이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니 브루크너 역시 음악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면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브루크너의 경우는 대기만성형으로 일흔 살까지도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가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나이는 환갑이 되고서라고 하는데 재능 뿐 아니라 노력 역시 음악가엔 필요한 것일 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식의 재능을 인정하고 길을 열어주려 노력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라는 거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유일하게 제목을 보고도 음악이 생각난 음악가가 있었는데 바로 쇼스타코비치이다. 러시아의 현대음악가로서 스탈린의 독재에서 자유로워야 할 예술이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지만 그 억압 속에서도 소련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서구 현대음악  어법의 대가로 자리 잡았던 그는<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 스탈린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면서 공포 정치의 폭력 속에서도 살아 꿈틀거리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재능은 독재든 사회주의든 막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조카의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 발표회가 있었다. 어린 음악가들의 솜씨를 보고 난 많이 놀랐다. 요즘 아이들이 악기 하나쯤은 누구나 다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도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인 한 꼬마의 피아노 솜씨였다. 이미 많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작은 손으로 그 멋진(아, 뭘 연주했는지 기억이 안 난가.- -) 음악을 반주하는 걸 보고 미래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상상될 정도였다. 그 아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음악 뿐 아니라 뭐든지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재능이든 관심이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는 시리즈 제목마냥 내가 몰랐던 교양을 많이 일깨워 주었다. 두고두고 볼 일이다. 최소한 이 책에 나온 음악과 음악가만 알아도 클래식에 대해 아는 척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멋진 클래식으로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