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SF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SF는 어쩐지 무섭다. 그래서 늘 그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안 읽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가끔 우연히 SF 소설을 잡으면 놓지를 못한다. 굉장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다가올 미래! 어쩌면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약간은 으스스하고 불안한 미래. 대부분의 SF는 그렇다. 지금보다 나아지는 게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읽기 시작하면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니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작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시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환상 문학에 속했던 그 소설을 읽고 난 한동안 불편했다. 무서웠고, 소설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공포에 떨었다. 만약 어느 미래에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이 책 『기억 전달자』를 읽으면서 나는「빌리지」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한 마을이라는  공통점과 마을 너머로는 나가지 못한다는 점이 많이 닮았다. 하지만 「빌리지」는 현실이었고, 『기억 전달자』는 어느 미래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두 이야기 모두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산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의문이 생기고, 호기심이 발동하면 피곤해지는 거다. 감정이 없는 세상,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등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곳, 어쩌면 그런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학벌도, 빈부의 차이도, 직업의 차별도 없는 그런 곳 말이다. 하지만 지구가 생겨나고 사회가 조성되면서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런 세상은 역시 꿈에서나 마주할 세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과학의 발달로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도 나쁜 기억 따윈 다 잊고 살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 기억을 잊게 해주는 약을 개발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가능성이 보이기도 한다.

조너스가 살고 있는 곳은 동일한 교육을 받고 똑같은 가족 형태를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다. 모든 어린이가 열두 살이 되는 해가 되면 직위가 내려진다. 열두 살이 되는 동안 아이의 행동과 성격을 파악하여 위원회에서 딱 맞는 직업을 정해 주는 거다. 그 직업이 정해지면 아이는 다 자란 것이 되고 부모와도 떨어져 남남인 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가족이라기보다는 동거인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기초가족’인 셈이다. 또한 그들은 감정이 없다. 사랑도, 눈물도, 아픔이란 것은 전혀 모른다. 사춘기가 오면 약으로 성욕을 억제시켜야 하고, 아이를 낳는 행위는 정해진 사람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정해진 대로 아이를 생산하는 시스템, 아이를 낳으면 입양을 보내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양부모가 키운다. 딴엔 사랑으로.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곳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아이에게 ‘위안물‘인 이제는 사라져 없는 동물 인형을 선물하는 것도, 열두 살이 되면 나이가 무의미하게 된다는 사실도, 나이가 들면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거울을 갖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며,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곳, 색깔도, 날씨도, 감정마저도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마음 편안한 일 일 것이다.

이제 열두 살이 된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를 받게 된다. 그 직위야말로 현재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표지의 주름지고 수심 가득한 표정의 나이 많은 남자의 모습처럼 기억을 보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몰랐던 조너스, 여태 살아온 그 삶만이 존재하리라 생각했던 조너스가 기억보유자가 되어 전달자인 노인에 의해 보고 느끼게 되는 모든 것들은 놀라움이었다가 부조리함으로 바뀌어버린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조너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 ‘선택’이란 기로에서 한번쯤 망설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혹시 이 선택을 해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후회하거나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었을 거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이 선택을 결정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세상이 그립기도 하다. 특히 아픔과 고통, 슬픔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난 음악과 색과 느낌과 감정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 ‘늘 같음 상태’, 며칠은 좋겠지만 의미가 없을 거다. 살아가는 것에. 그래서 조너스가 살던 세상에선 열두 살 이후의 나이는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SF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핑계인 것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