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언제일까? 서점에 갈 때마다 판매대에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소개해 놓고 있어도 얇다는 이유만으로 사서 읽을 생각도 안 하다가 우연히 읽은 『오후 네시 』와 『반박』에 빠져 그 날로 아멜리 노통브의 팬이 되었던 나,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전작을 찾아 읽고 싶어하는 성격에 그녀의 소설을 거의 다 찾아 읽었다. 기발하고 때론 어이가 없기도 한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면 표지 안쪽에 혹은 뒷 표지에 인쇄된 그녀의 모습만큼이나  으스스했다. 희곡을 좋아하지 않아 희곡만 빼고선 그녀의 책을 다 읽었는데 어쩐지 이 책이 나왔을 땐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노통브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식었던 걸까?   

내 집엔 케이블 방송이 안 나온다. 원래 공중파도 잘 안 보는 성격이라 처음 케이블에서 하는 한 남자를 두고 여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프로를 보면서 참 어이가 없었다. 언젠가는 미녀를 두고 추남(?)들을 불러 그 중에 한 사람을 뽑는 괴상망측한 프로도 보았다. 이렇게 비슷한 프로들이 끊임없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 원하는 시청자들이 있기에 만들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노통브는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재작년 여름에 미녀와 야수 같은 독특한 소설이던 『머큐리 』를 읽은 후 나는 노통브에 대한 나의 애정을 사실상 살짝 접었다. 늘 파격적인 이야기와 결말이 처음엔 흥미롭다가 너무 비슷하니 지겨워졌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이 책 『황산』이 출간 되었을 때도 재작년처럼 신간이 나오자마자 미친듯이 사서 읽은 것과는 반대로 오랜 애정으로 인해 눈길은 갔지만 구입을 하진 않았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보니 어쩐지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식물원에 산책 나간 사람들을 강제로 트럭에 태워 어느 장소로 끌고가 세계대전 때의 포로수용소마냥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들을 감시하고 심지어는 폭행과 사형까지 서슴지 않는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들. 알고보니 그들은 한 방송사의 직원이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생방송되고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잡혀간 그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나라가 아무리 썩어빠졌기로서니 사람을 때리고 죽이기도 하는 그 프로에 대해 방관만 하고 있단 말인가? 끌려간 사람들에겐 가족들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끌려간 사람들은 또 어떤가? 아무리 죽음이 두려워도 어찌 그리 무력한지  읽는 내내 노통브를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왠지 억지스럽다는 생각만 든다.
 
물론 이 책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현실을 비판한 우화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녀의 '문학적인'문체는 알겠지만 그래도 어딘지 억지가 보인다. 쉽게 실망했다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뛰어난 작가에게도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란게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올인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하루끼 이후로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신선함과 산뜻함에 푹 빠졌었던 것 같다. 그당시 우리 문학은 여전히 무거웠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녀의 작품에 푹 빠져 나오는 것마다 열심히 사 읽다가 어느 순간에 이젠 지겨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변덕이 죽을 끓어 좋아한다고 해 놓고선 이젠 지겹다고 하면 진정 그 작가를 좋아한 게 아니라고 한다해도 어쩌랴! 아무튼 그녀의 신간을 언제부터인가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그간 일본 문학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온 탓도 있고, 바나나류의 일본 문학들이 너무 많았던 탓도 있다. 그리고 지난번에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눈에 띄길래 집어 들었다. 얇아보여 금방 읽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고, 바나나니깐 재미있어서 금방 읽겠지 하고...아, 난 가능하면 읽은 책은 짧더라도 모두 글로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재미없었다거나 실망스러웠다거나 라는 말보다는 그저 내가 잘 못 읽은 탓이라고 하고 싶다.--; 
 
책이란 그걸 읽는 독자의 현실 상황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다. 그러니 어떤 독자는 감명 받았다 하고 어떤 독자는 실망스러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취향이라기보다는 독자의 현 상황과 마음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의 글도 지겨워~하고 읽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그녀의 신간 『리진』을 읽고서야 그 지겨워~라는 말을 거두었다. 이젠 신경숙 작가의 지겨운(?) 글들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렇듯 노통브도, 바나나도 나의 변덕을 비웃으며 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왜? 이러나저러나 나는 그들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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