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행복하라 -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뉴욕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래전 동네에 있던 제과점과 종초홍의 파마머리가 흩날리던 센트럴 파크의 가을이다. 또 뉴욕으로 이민 간 친구가 생각나고, 「섹스 앤 시티」가 생각나고, 우디 앨런이 생각난다. 그리고 최근엔 뉴욕하면 9 ·11이 생각난다. 내게 뉴욕은 꿈의 도시가 아니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다. 박물관이나 소호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종전시장이라는 그곳의 수많은 인종들을 구경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센트럴 파크의 가을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거의 내 머릿속에 박혀있어 뉴욕이야기만 나오면 센트럴 파크는 자동적으로 나온다. 친구는 뉴욕은 시내만 제외하면 어디에 있든 다 센트럴 파크라고 누누이 내게 이야기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나는 죽으나 사나 센트럴 파크를 이야기 한다. 「뉴욕의 가을」에서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가 걷던 그 아름다운 길 말이다.

저자인 박준의 여행기는 꽤 특별하다. 지난해 내 보였던 『온 더 로드』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뉴욕이다. 남들처럼 뉴욕을 돌아다니며 뉴욕의 곳곳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가 인터뷰한 뉴요커들의 이야기 속에 뉴욕이 온전히 들어앉았다. 역시 『온 더 로드』를 다 읽었을 때와 같이 지금 당장 뉴욕으로 떠나야 할 것만 같다. 자유와 꿈이 있는 그곳으로.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 내 멋대로 행복해라』(삼성출판사)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뉴욕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저자가 만난, 제 의지로 뉴욕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치열하고 자극적인 뉴욕에서 살아가는 것이 뭐가 그리 즐거운가 싶지만 그곳에서 부딪치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버티는 삶의 에너지가 활력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비록 이곳이 뉴욕은 아니지만 좀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션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자신의 스튜디오가 곧 헐리면 또 저렴한 스튜디오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 넉넉지 않은 뮤지션이지만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거리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뉴욕에 흠뻑 취한다는 그는 그것이 다른 도시와 다른 뉴욕의 자유라고 말한다. 뉴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기 말이다.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부모를 졸라 시집 자금을 선불 받아 온 뉴욕에서 프리랜서 사진가가 된 김정, 처음 온 뉴욕의 이미지가 깨진 창문에 죽은 바퀴벌레 시체들, 문도 잠기지 않은 집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한국보다 뉴욕으로 와야 마음이 안정되고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내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이곳이 한편으로 쓸쓸하고 외롭지만 스스로 나를 가꾸고 살아야 발전하고 잘 살 수 있기에 마침내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 갖는 그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고 하니 그녀의 열정이 내게도 전해오는 것 같다. 무엇인가 이루었을 때의 그 스스로 대견해하는 뿌듯함 말이다.

또, 늦은 나이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홀로 뉴욕으로 와 공부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고 다녔다는 마종일 씨는 뉴욕에 오지 않았으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공부하고 살기 위해 오로지 한 일이라곤 버틴 것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삶이란 역경을 참고 이겨내야 새로운 단계로 전환하는 거라고 말한다. 뉴욕에 오고 12년이 흘러 이제 그는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여전히 뜨겁다. 웨스트 빌리지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 가을 햇볕 받으며 11시쯤 다이너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산책하다가 작업하러 가는 목표가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산다.

특별한 또 한 사람 할렘에 사는 임산아, 많은 뉴요커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그녀는 조기유학을 와서 열네 살 때부터 샌드위치가게에서 일하고,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 수재이며, 스스로 돈을 벌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일찍 깨우친 덕분에 지금은 여성관련 인턴십을 하면서 아프리카에 가서 조산원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야무진 스물세 살이다. 그녀가 뉴욕에 있는 이유는 단지 당분간 일을 해서 학비를 갚기 위함이고 자신이 일하고 싶은 비영리 기관이 많이 있기 때문이란다. 남들은 꺼리는 할렘에 사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 여성들을 위해(그것도 남미나 아프리카의 학대받는 여성들)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들을 도울 것인가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가지며 살고, 물건이라는 것은 어차피 물건일 수박에 없으므로 없어진들 어떠냐는 긍정적인 그녀의 태도는 나를 충분히 자극하였다.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인 그녀가 그런 생각에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있는데 나는 그 나이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가? 하는 후회도 잠시 밀려왔다.

그 외에도 아홉 명의 뉴요커들이 자신들의 삶과 뉴욕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한다. 하나 같이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열정적이고 때로는 전투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그들을 엿보면서 좁은 방과 쥐와 바퀴벌레가 나오고 비싼 렌트비에 하루하루 살기 박해도 긍정적이고 남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 누가 뭐라 하건 자기만의 열정을 품고 사는 그들, 진정한 뉴요커다.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9 ·11 이후의 삶,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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