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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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파주의 에세이 『』는 비를 좋아하는 소수를 위한 변론이다. 아니, 소수라는 것은 나처럼 비를 그다지 좋아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감성적으로 보자면 우울함을 느낄 수 있고, 분위기에 젖고 싶을 때 비를 기다릴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푹푹 찌는 더위가 지속되거나 가뭄으로 온 세상이 목말라 할 때 비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 비가 매번 고마운 것은 아니다. 포악한 태풍이 주고 가는 반갑지 않은 난리와 끝없이 내리는 장마로 인해 생기는 눅눅함은 불쾌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였다. 하교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정말 억수같이 내리는 비였다.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오지 못하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터였고 난 학교에서 멍청하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가 싫었다. 무더웠고, 갑자기 내린 비를 먹은 흙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한동안 어떡하나 비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딴엔 빨리 달리면 비를 조금밖에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억수 같은 빗속을 뚫고 지나가기란 어림도 없는 일.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렸다.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다 젖어버리자 나도 모르게 뛰기를 멈추었다. 그러고선 걷기 시작했다. 이미 젖어버려 더는 젖을 것이 없음을 알았을 때 그 기분이란 편안함과 느긋함, 그것이었다. 그때부터 난 비를 즐겼다. 쏟아지는 빗속을 걷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점점 집과 가까워지는 것이 싫을 정도였다. 그 후로 소나기가 내리면 나는 늘 그때를 생각한다. 시간차이도 느끼지 않고 빗속에서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이젠 산성비니 황사비니 하며 비를 맞는다는 것은 수명을 단축하는 일인 양 큰 일이 되어 있어서 비를 맞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되었지만 문득 소나기가 내리면 빗속으로 돌진하고 싶어진다. 용기를 내서 말이다.

발레리 해밀이라는 그림 작가의 유쾌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이 책은 마르탱 파주의 ‘비’에 얽힌, 비에 관한 철학적, 시적 글들과 잘 어울려 독특한 에세이를 구성했다. 장마철인 요즘 참 잘 어울리는 한 권의 책. 비에 대한 마술적이고 달콤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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