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 - 많이, 더 많이!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관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2
프랜신 프로즈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프랜신 프로즈는 탐식이 인간의 일곱 가지 욕망 중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역설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탐식은 다른 질병을 끌어들이는 질병이고, 다른 욕망들과는 달리 그 대가가 온 몸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 그렇다고 해도 먹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 건가 의문을 가졌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 하는 한숨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중세 종교 문화에서 탐식은 정욕을 불러들이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먹어야만 살 수 있지만 그 먹는 것이 지나치다보면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이 발동하여 ‘충동‘이라는 죄를 불러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일리가 있다. 어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을 하기도 하니깐. 하지만 좀 먹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중세 교부들이 일곱 가지 대죄에 탐식을 집어넣은 것은 과도한 식사를 말하는 것보다는 술에 탐닉하는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성 바실리우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음식을 삼킴으로써 미각은 언제나 탐식을 꾀어 내게 되고, 안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오르는 부드러운 체액으로 몸을 살찌우고 쾌락에 빠뜨린다. 이로 인해 결국엔 광란의 성교 빠지게 된다.”(p23) 즉, 중세의 탐식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술의 탐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요한이 술에 취해 누이를 강간하고, 훈 족의 아틸라는 술에 취해 잠을 자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수치와 불명예 속에서 죽어 갔다. 이런 음주에 의한 탐닉이 탐식이라는 욕망에 의해 야기되었으므로 탐식이야말로 일곱 가지 대죄 중에 분명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교부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나는 고기의 불결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욕망의 불결함이 두렵다.”라고 했다. 또 그는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먹느냐임을 강조했다. 즉 긴장을 풀고 몸의 욕구를 채우며 즐길 때에만 ‘죄‘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중세의 수녀들은 ’성스러운 거식증‘이라 불리는 창의적이고 혐오스러운 온갖 자발적 고행을 탐닉하듯 행하여 스스로 기아에 빠짐으로써 자신의 몸에 벌을 가했다. 그런 것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거다.

이 책을 읽다보면 솔직히 반발이 생긴다. 아무리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거려도, 보슈의 「최후의 심판」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어도, 브뤼겔이 탐식이야말로 사후에  당할 고통이 아니라 지금 현재 세상에서 내보이는 징글징글한 추함이라고 강조하고, 스펜서가 「요정 여왕」에서 효과적이고 혐오감 자아내는 글로 탐식에 대해 놀라울 만큼 극단적인 표현을 했대도 말이다.

물론 중세의 주장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의 사람들이 맛을 찾아다니고 먹는 것에 집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양상하고는 많이 다르다. 현재의 탐식은 ‘죄’보다는 ‘병’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과식이 ‘병’을 불러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에 와서 온갖 다양한 질병을 야기하는 음식의 위력에 사람들은 사실 많이 움츠려있다. 살이 찌지 않으려고 운동하고 소식한다. 그런 것들이 오래 전 교부들의 주장처럼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먹는 자가 먹히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그 시대와 다르다. 그러므로 현 시대에서 탐식이야말로 일곱 가지 대죄 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대죄라고 보기엔 틀린 주장이 아닐까 싶다.

 

프랜신 프로즈는 이야기 한다. 탐식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이르렀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고 그리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육체의 욕구와 영혼의 허기 사이의 관계와 갈등을 나는 다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현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탐식을 하기보다는 적절한 식사 습관으로, 죄를 짓기보다는 병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만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만으로도 나는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다. 이 책을 읽고도 이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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