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렌즈 - 2007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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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읽고 가슴 싸하게 남는 뭔가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게 뭐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따위의 생각이 들 것 같으면 더더욱 읽지 말기를 권유한다. 처음부터 아니다 싶으면 집어던지시길. 어쨌거나 한국 소설도 이젠 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좀 가볍고, 유쾌하고, 즐겁고, 자기중심적으로 말이다. 그러니 너무 가볍잖아,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말도 안 돼. 라는 생각이 든다면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란 얘길 듣기 딱 좋다.


일찍이 박현욱은 두 명의 남편과 두 집 살림을 하는 인아를 등장시켜 이런 일이 어떻게! 말도 안 돼 라는 ‘‘을 독자들로 하게끔 만들었고(아내가 결혼했다), 정이현은 발칙하고, 도발적인 현재를 살고 있는 은수를 내세워 도시의 삶을 선보이며 까칠하지만 ’바로 내 이야기야‘ 하는 내용의 소설을 발표하여 한국판 치크리트chick-lit 소설을 등장시켰다(달콤한 나의 도시). 또 오현종은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 스파이라는 직업을 등장시켜 적어도 ’‘를 황당하게 만들었다(난 아직도 007이 진짜 스파이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 이런 소설들은 그동안 한국 문학을 이끌고 오던 이념과 경제, 정치와는 다르게 나, 혹은 너를 주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래서 기존의 소설들에서 느껴지던 무게감과 읽은 후 한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씁쓸함이 사라지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되어 버리자 어? 너무 가볍잖아 하는 반응을 내 보이게 된 것이다.


200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홍의『걸프렌즈』(민음사)는 21세기다운 연애 방식을 보여준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들의 우정, 질투 그러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이 도발적인 작가 이홍의 ‘’빨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가 가능한 일이란 말이냐? 읽으면서 내도록 던지게 되는 이 의문부호가 마지막에 가서 설마? 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끝이 났다하더라도 허허거리며 하긴 셋이나 넷이나 뭐 하는 넓은 이해심이 생기고 마니 말이다.


물론 이홍이 콩다방, 별다방을 등장시키고 맥도날드에서 버거킹으로 넘어간 사연이나 이젠 맥도날드도 가고, 버거킹도 가고, 피자헛도 가고 KFC도 갈 수 있다. 취향이다. 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때 우린 이미 그의 ‘‘빨에 얽혀 들어가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취향이잖아? 너도 그렇잖아? 하며 능청스럽게 독자를 끌고 들어가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가능하지 않겠어? 해 버리니 할 말이 없다.


이야기는 이렇다. 피겨스케이팅의 감미로운 스핀 같은 혀끝에 넘어간 한송이는 외모도 학벌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남자인 유진호와 우연히 사귀게 되자 연애상대라고 생각했지 결혼상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호와 사귀면서 그가 사귀고 있던 다른 여자 진과 보라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한송이는 살짝 질투한다. 진호 몰래 그녀들을 만났는데 너무나 쿨하고 멋진 여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만나게 된 송이는 어이없게도 진과 보라와 연적은커녕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더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합리화 한다. 이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여자들이 한 남자를 공유한 것뿐이라고. 오호라~


“그렇지?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잖아. 그런데 왜 그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섀도는 세 가지를 바르면서 여러 사랑을 함께하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지? 왜 꼭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다 채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거지? 사실 그럴 수 없잖아. 내가 미처 채울 수 없는 부분,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주면 어때서? 난 상관없다고 했어. 누구를 만나든 말든. 솔직히 말해서, 여럿 사랑하는 게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이 아니잖아? 왜, 여행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옷은 이것저것 입으면서, 책도 이 책 저 책 읽고 싶은 거 읽으면서, 음식도 한 가지만 먹으면 입에 물린다고 난리면서, 그런 게 사람의 욕망이란 걸 뻔히 알면서,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절대 안 되는 건지, 왜 그게 용납되지 않는 건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p119)


그들은 진호 몰래 자주 만나지만 서로가 만나는 사실을 아무도 진호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진호는 셋이 같이 있는 줄 모르고 보라에게 전화해서 만나자 하고 송이에게 바로 전화해서 오늘 약속이 있다면서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둘러댄다. 그걸 옆에서 서로 눈치를 채면서도 아무도 묻지도 아는 척도 안 한다. 아, 이 발칙한 여자들이라니. 한 남자를 두고 싸우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여자끼리 남자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허, 어이가 없지만 뭐 취향이니까.


어떤가? 변화하는 한국 소설이 보이는가? 이 발칙한 연애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맥도날드나 버거킹이나, 피자헛이나 KFC나 닭을 먹다가 질리면 햄버그를 먹는 거고, 그게 질리면 피자를 먹는 거지. 다 취향 아니겠는가? 취향. 무거운 문체가 좀 버겁다면 이젠 이 능청스러운 문체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지. 집어던질 거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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