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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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 어릴 때는 그랬다. 명절만 되면 외화를 보여주었는데 단골로 나오는 외화가 ‘성룡‘이 나오는 거였고, 그것도 아니면 서부영화였다. 또 연말만 되면 「십계」니 「삼손과 데릴라」 같은 기원전 성서를 바탕으로 한 로마시대의 이야기였다. 「스파르타쿠스」 역시 그런 영화 중의 하나였다. 아마 서너 번은 본 기억이 나는데 스파르타쿠스로 분한 ’커크 더글라스‘의 분노에 찬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대체로 이런 영화는 잔인하다. 특히 그 시기엔 폭력과 공포, 권력투쟁에 있어서 폭력과 살인에 있어 서슴지 않고 하던 시기였기에 영화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좀 걸러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동물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 장면들은 어린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에 대해 조금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한편으론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말이다.^^

 

막스 갈로의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은 전체적 줄거리로 볼 때 그 영화와 아주 비슷하다. 스파르타쿠스가 갈빅스와 살생결투를 벌일 때,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한 스파르타쿠스를 갈빅스가 죽이지 않고 그 대신 로마병사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이나 노예들을 이끌고 로마군을 물리치던 장면, 마지막 부분에 해적에게 속임을 당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것을 제외하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에서는 화자가 여러 명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죽기 전에 말한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현 해 준 유대인 자이르와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 아폴로니아, 그리스인 포시디오노스, 그리고 로마 최고의 권력자이자 최고 부자인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속주 총독의 부관인 살리나토르. 그들은 살아서 스파르타쿠스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가 이끈 전투에 대해, 그와 뜻을 같이한 수많은 노예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했는지 이야기 해주길 바란 스파르타쿠스의 뜻에 따라 그들은 이야기를 남겼다. 삶과 죽음을 선택한 자유인으로서 죽음을….


하지만 말하는 짐승 취급을 받던 노예들, 그렇게 살기 싫었던 스파르타쿠스가 자신을 따르는 다른 노예들과 함께 로마 군단에 맞서서 자유를 갈망하며 자유를 찾기 위해 전투를 벌이지만 솔직히 그들의 행동은 결국 로마군단과 다름없었다. 노예로 팔려와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 결국엔 짐승에게 뜯어 먹히는 죽음을 당한 그들이었지만 자유라는 명목으로 로마인들과 똑같은 행동으로 로마인을 처참하게 죽이고 짓밟는다. 그게 과연 자유였을까?


막스 갈로는 극도의 잔인성과 최상의 정묘함이 공존하는 로마 사회를 그 시대의 일원으로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글을 썼다고 하지만 너무 객관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행동에서 정당성을 찾기란 힘들다. 짐승취급을 받았기에 자유를 찾기 위해 그들은 일어섰지만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감정과 고뇌가 없다면 스파르타쿠스가 말한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체적으로 정말 잔인하다. 이 책이 영화화 된다면 온통 핏빛만 난무하는 아무 의미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막스 갈로는 나름대로 가장 실제 같은 소설을 만들었다는 평을 얻었지만 나는 막스 갈로의 이 정묘한 소설로 인해 그 시대의 로마군이나 노예들에게 마저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시대 로마에선 근친상간이든 동성애든 신과 함께라면 어떠한 비도덕적인 행동도 도덕적이라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로마라니! 나만 몰랐나?;;


가끔 역사소설은 저자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서 읽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임에도 뭔가 다른 부분을 느끼게 되어 헷갈리지만 실재와 허구를 적절히 버무려내는 솜씨들은 정말 탁월하다. 그래서 재미는 있다. 잔인해도. 단, 내용면에서 살짝 실망스러웠고 원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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