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결혼한 소녀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내 귀여운 조카는 책을 몹시 좋아한다. 일단 재미있는 책에 빠져들면 옆에서 무슨 소릴 해도 듣지를 않는다. 내가 집에 놀러 가면 만사를 제쳐두고 ‘고모’하며 달려오는데 달려오지 않는 날은 필시 책에 빠져 있는 중이다. 그 날도 ‘고모 왔다’하고 들어갔는데도 소파에 앉아 책읽기에 열중이다. 약이 올라 ‘고모 왔다고!’ 소릴 쳐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기에 아는 척도 안 하냐 하며 들여다보니 아주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사자와 결혼한 소녀』라고 적혀 있다. 처음 보는 책이라 궁금해진 나는 그 옆에 비슷한 일러스트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라는 책이 보이기에 조카 옆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어? 근데 첫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건 어린이 책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린이 책이 아닌 것 같은데?” 하자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하는 말 “난 이것보다도 더 두꺼운『위니 더 푸우』도 읽었다고” 한다. - -; 뭐 그건 그렇지만…. 에라, 모르겠다. 재미있으면 읽어라 하고선 나 역시 비비원숭이에 몰입했다.


이 책들은 아프리카의 두 나라, 짐바브웨와 보츠나와에서 구전되는 민담들을 엮은 책이다. 우리네 이야기와는 다르게 조금 황당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표지와 본문의 깜찍한 일러스트가 말해주듯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알랭 마방쿠의 『가시도치의 회고록』이 생각났는데 그 이윤 아프리카라는 공통점과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이 가시도치처럼 말을 하거나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간교한 토끼, 멍청한 사자의 이야기부터 생소한 아프리카의 문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의 설화나 이솝우화와 닮은 듯하면서도 아프리카 특유의 풍속이 들어 있어 신기하고 황당하며 웃긴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에 나오는 「뿔닭 아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프리카 여인네의 아픈 마음을 잘 묘사했는데 뒷부분에서 아이를 낳아 잘난 척하는 둘째 부인의 배속에 들어간 뿔닭이 하는 행위는 꽤 섬뜩하다. 「냄새나는 소녀를 상냥하게 대한 할머니」나 「두 명의 나쁜 친구」,「못된 삼촌들」의 경우는 우리의 권선징악과 닮아 있다. 남에게 해롭게 하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제목도 재미있는 「왜 코끼리와 하이에나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까」와 「어떻게 이상한 동물이 아가씨 자리를 차지했다가 구멍에 떨어졌는가」같은 이야기는 아프리카이기에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머리에 자란 나무」는 김언수의 『캐비닛』에 나오는 심토머가 잠깐 생각나기도 했는데 필요할 땐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다가 막상 제 배를 채우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인간 군상을 잘 표현해 주었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 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는 조카와 내가 신기해하며 좋아하던 이야기가 「눈먼 남자가 새를 잡다」이다. 눈이 멀었지만 탁월한 청력과 느낌으로 새를 잡고 속임수 쓰는 친구에게 일침을 가하던 눈먼 남자의 활약이 신기해 조카는 연방 눈이 멀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해했다.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는 염소와 표범이 친구로 나온다. 둘은 친한 사이였으나 표범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결국 자기 새끼를 잃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우리 설화처럼 교훈적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다. 이런 교훈은 이제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 책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프리카라는 지역 때문이다. 덥고 메마른 땅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물이 있는 강가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삶이야 말로 축복받은 삶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나기도 한다. 또 비쩍 마른 몸매보다는 살이 통통 오르고 피부에 윤이 나는 사람이 사람답고 잘 산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이야기면서 달라 보이는 것은 그런 문화적 차이가 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는 짐바브웨 출신으로 작년에 본 적이 있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시리즈의 작가이다. 그 책을 제목만 보고 도서관에서 몇 번 빌려볼 생각을 했는데 결국 빌리지는 못했지만 이 책들을 읽고 나니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의 경우는 판매수익이 모두 짐바브웨 사람들을 돕는데 쓰인단다. 아이들을 포함한 환자들에게 쓸 의약품을 사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원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많이 사보길 바란다. 아프리카 문화도 알고, 좋은 일도 하고 이거야말로 민담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조카와 나는 그 날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다. 어른이 읽는 책이든 아이가 읽는 책이든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다지 상관은 안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겐 좀 무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카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우화들을 보니 다 동물과 관련된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이었으니 스스로 알아서 아이들이 좋아라할 만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진 것 같아 안심을 했다나. 참고로 이 책은 어린이도 같이 읽어도 좋다고 나와 있긴 하다.^^ 이제 아프리카의 문화로 빠져들어 보자. 새롭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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