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걸어라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인생의 교훈들
조이스 럽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여행서적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여행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 다르게 보면 종교적 색채가 보여 종교 서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읽어본 바에 의하면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다. 꼭 종교가 있어야만 순례길을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내 인생의 여정이 궁금해질 그때,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이다.


여느 여행 서적과는 다르게 이 책은 여행의 정보 따윈 나오지 않는다. 표지 안쪽에 순례길의 약도가 나와 있긴 하지만 지명만 보여주는 그다지 쓸모없는 약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그 길을 직접 간 것은 아니지만 꼭 다녀온 느낌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깨달음을 받는다면 나도 조만간 가서 내 인생의 고민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가서 말이다.


느긋하게 걸어라』 순례길을 걸었던 저자가 그때 받은 인생에 대한 교훈과 깨달음을 25가지의 주제로 정리한 것이다. 주제별로 읽어보면 글 내용 하나하나가 아주 매력적이어서 나도 여행을 다닌다면 이런 방법의 여행기를 시도해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물론 잘 될 거란 보장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25가지 주제만 보아도 사실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 만하다. 그 자체로도 깨달음을 받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어찌나 일목요연하게 그 주제에 맞게 글을 잘 썼는지 어느 것 하나 빠트릴 문장이 없다. 정말, 이 책안에는 인생길이 있다.


이 길의 유래와 연관된 전설을 이야기 하던「역사의 정기를 받으라」로 시작하여 예비훈련을 준비해야 한다는「준비하고 떠나라」, 늘 목적지와 일의 성취에만 매달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라던「느긋하게 걸어라」, 모험은 마음을 열고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에 달려 있으니 모험에게 도전장을 던져보라던 「삶이 위대한 모함임을 잊지 말라」, 삶이란 현재이며, 현재가 아닐 때가 없다던「현재를 살라」, 내 몸은 내가 사랑해야 함을,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과 친구가 되어 거기서 배워야 한다는 멋진 지혜를 가르쳐 준「몸에 귀를 기울이라」 아, 정말 이 정도만으로도 인생이 뭔지 보인다.


친절한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행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은 친절로서 받아들이라 하고,(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을 받아들이라) 여행을 하다보면 불시에 몰아치는 기후 변화와 순탄하지 못한 길, 화장실의 사정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대한 불평. 그런 모든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여행길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쾌감을 느낄 것이다.(역경에 굴하지 말라) 또 여행 도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그 자체로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라 하며,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면 삶이 편안해짐을 알게 된다. 이외에도 많은 좋은 주제들로 저자는 여행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사람들은 도피하듯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감동적으로 읽은「내려놓으라」에 대한 깨달음에는 ‘무엇이든 귀한 것일수록 움켜쥐지 말고 그것을 든 손을 감사함으로 펴라. 그럴 때 삶은 훨씬 순탄해진다.’라는 멋진 말이 있다. 지금 내 상황과 아마 잘 어울렸기에 그 글들이 내 마음 속에 훨씬 더 다가 온지도 모르겠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사는지 깨닫게 되었다. 분명 서울 올 때는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것 같은데 어느 새 주체하기도 힘든 만큼의 짐들이 나를 옭매고 있는지 이렇게 많은 짐들 때문에 내가 꼼짝달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 공간의 운치와 평화, 편안한 침대, 푹신한 의자, 좋은 책이 빼곡한 책장, 즐겨 듣는 음악, 건강식품을 넣어 둔 냉장고와 찬장, 언제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전화와 컴퓨터. 생각하면 할수록 안락과 편의의 욕망이 나를 더 잡아끌었다‘ 이런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어 그것들에게 미련을 둔 내가 한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나의 이런 깨달음도 이번에 이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면 몰랐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안한 공간을 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드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에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작정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자유롭다. 내려놓음의 결과가 이렇게 편안한 것을 그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나는 대체로 느긋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결과를 보기 위해 무리해서 서두르고, 그 결과가 나쁘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며, 끊임없이 불필요한 것들을 사다 모으며 집착하고, 모험을 두려워하며, 역경은 피해가려고만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잘 걸어 온 것일까? 앞으로도 잘 이겨내며 걸어갈 것인가? 해답은 없다. 그러나 방법은 알았으니 이젠 용기를 좀 낼 때인 것 같다. 모험 속으로 뛰어들 용기, 역경에 굴하지 않을 용기 말이다.


매일의 삶이 곧 순례요 모험이다. 그 길을 한번 느긋하게 걸어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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