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의 작품은 좀 어렵다. 내가 김연수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으로 뽑힌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였던 것 같다. 포스터모더니즘이 유행할 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서점을 장악할 때였다. 사실 난 그 책을 나름 열심히 읽었으나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뭘 뜻하는 지도 모르던 때였고, 한참 감성적인 문체에 빠져들었던 터라 어딘지 모르게 하루키를 닮은 그 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러다 그의 추억이 들어 있는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읽은 후부터 그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이번에 읽은 소설집 『나는 유령 작가입니다』는 나온 지 몇 년 되었으나 이제야 펼쳐 보게 되었다. 이유랄 것은 없지만 그동안 내가 한국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소설은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 좀 꿀꿀하고 무겁다. 내가 그런 책만 골라 읽은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류의 책들이 많은지는 잘 모르지만 암튼 그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는 작가들의 책을 보곤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잘 읽히다니, 이렇게 가볍다니…. 칭찬인지 악담인지는 이야기 하지 않으련다. 그냥 내가 받은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다시 김연수로 돌아와서, 이 책에 나오는 그의 단편들은 문학지를 통해서 한번쯤 대충 읽은 기억은 나지만 정독을 해보진 않았기에 항상 책을 볼 때마다 읽어줘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면 믿으시려나?^^ 아무튼 드디어 읽어주었다. 그리고 난 솔직히 놀랐다. 김연수라는 작가는 좋아하는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가 딱 구분이 되어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한데 그 개성이 이 책에서 여과 없이 발휘한 것이다. 엮어 놓은 아홉 작품이 하나 같이 나름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혼한 남녀가 우연히 만나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그녀가 한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자신을 끌고 다녔다는 결론을 내린 남자는 그 날의 행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고 그 의미 속에서 우연이라는 단어를 두고 남자는 그 연속성을 생각한다. 박지원이 나오고, 김옥균이 나오고, 제중원이 나온다. 하지만 결국 그 오래된 백송을 두고 그가 찾아다닌 의미의결과는 그저 우연이라는 결과일 뿐이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언니와 동생 그리고 언니의 애인, 세 사람의 짧은 인연은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내 보이며 인간은 이해 받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소통에 대한 불가능을 여러 번 암시 한다.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동생의 몸부림이 자살로 이어지자 “자살할 만큼 마음이 괴로웠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언니는 안타까워한다.(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뿌넝숴, 결코 말할 수 없음이 말하는 역사는 책이나 기념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역사를 살아본 자는 푸념한다.(뿌넝숴) 또 전혀 다른 시각으로 패러디한 춘향과 변사또 이야기는 과연 진실이 무엇이고, 역사는 또 무엇을 기록하는지 이야기하다가(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 사실, 숨은 진실은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되며, 역사에 대한 불신은 끝내 말할 수 없는 삶의 비애임을  보여준다. 뿌넝숴, 뿌넝숴.


김연수가 이야기 하는 아홉 편의 작품은 「거짓된 마음의 역사」를 제외하곤 슬픈 결말을 가지고 있다. 또 특이한 것은 장소와 연대다. 안국동 길을 걷다가 19세기말의 조선으로 가고, 다시 런던으로 넘어가더니 어느새 1930년대의 식민지 시대로 돌아간다. 그런 시도는 김연수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진지함을 살짝 버무려 김연수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어려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너무나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글이다.


이제 그의 다음 작품을 읽을 차례가 되었다. 몇 년 전 문학동네에서 연재했던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이 그것이다. 그 작품에서 그는 또 어떤 식으로 김연수 표 개성을 드러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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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3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7-06-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고마워요. 댓글다는 사람이 없어서 쓸쓸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