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기리노 나쓰오와 같은 작가는 어느 나라에나 있겠지만 왜 유독 일본은 정말 이상한 나라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걸까? 아무리 소설이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기리노 나쓰오의 상상은 정말 기괴하다. 그러면서 신간 나오자마자 사서 읽는 나는 더 이상하지만 말이다.- -;;


아임 소리 마마』를 읽고 그 기괴함에 놀라워 『그로테스크』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다. 읽는 내내 한숨만 나오고 언짢았지만 그럼에도 읽게 되는 것이 기리노 나쓰오의 매력인 것 같다. 전작들에 이어 여전히 얼굴이 찌푸려지는『잔학기』는 유아 납치 감금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유아 납치에 관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기가 힘든데 이 책은 그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엄마의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고 아빠 마중이나 나가야겠다고 나간 열 살의 게이코는 그 밤에 겐지에게 납치당한다. 약간의 정신장애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겐지와의 일 년에 걸친 동거는 게이코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 일 년 동안 게이코가 겪었을 많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들은 마침내 구출이 되었다고 해서 그녀를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았다.


놀림감. 나는 내가 단지의 베란다에 나타난 사람들의 얼굴을. 인산인해를 이뤄 발돋음을 해서라도 나를 보려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의 불행을 엿보는 ‘죄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라니, 야타베 씨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책상에 머리를 얹은 내 눈에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도 곧 멈추어 메마르고 말았다. (p105)


사람들은 그렇다. 게이코가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 한다 해도 믿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무엇’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찌 게이코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아빠와 이혼한 엄마를 따라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는 이야기를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책 『잔학기』의 시작은 소설가로 성공한 게이코가 어느 날 한 남자의 편지를 받고 사라졌다면서 아내가 출판사에 보내달라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원고와 같이 남편이 출판사에 보낸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잔학기」라는 제목의 그 원고는 게이코가 오래 전 발표한 「진흙처럼」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진흙처럼」이 소설이라면 「잔학기」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라는 거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그건 오로지 겐지와 게이코만이 알 것이다. 평생을 간직해온 비밀을 과연 게이코가 그렇게 순순히  내보였을까?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나는 다 읽고 나서도 뭐가 사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거짓인지 알아 낼 수 가 없었다. 또 게이코가 왜 사라져야 했는지….


옮긴이의 말처럼 기타무라 게이코는 소설의 등장인물에게뿐 아니라 독자들의 시선 앞에서조차 존재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며, 그 잃어버린 존재는 구출되어 나온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으로부터의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다시 겐지와 엮여 그 시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을지도 모르겠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 소설로 피해자인 게이코에 대한 대중의 불분명한 추측과 시선을 비판한다. 사회와 소통하는 문학, 소설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법. 그래서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무섭다. 정말 무서운 작가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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