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
김원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 전에 김원일 선생의 『마당 깊은 집』을 읽었다. 그러나 『마당 깊은 집』을 제외하곤 한동안 김원일 선생의 글은 읽은 기억이 없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에 소홀했고, 소문이 많이 난 소설이라고 해도 굳이 읽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마당 깊은 집』을 읽은 후로 나는 해방 전후나 6.25에 관한 이야기, 혹은 나라는 다르지만 한 가족의 인생사나 성장소설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와 그 시리즈 2편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같은 소설 역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또 은희경의 『새의 선물』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요즘 들어 우연이라면 우연하게도 한국 소설을 자주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전갈』이 나왔을 때,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삼대의 가족사’라는 소개 글에 주저함 없이 선택하여 읽은 것도 김원일이라는 이름과 삼대의 가족사라는 내용에 끌렸기 때문이다. 역시 관록을 가진 작가라 요즘 나오는 가벼운 글들에 비하면 비록 비극적인 소설이라도 훨씬 읽는 맛이 났다.


『전갈』은 화자의 할아버지가 태어나 살았던 일제강점기부터 화자가 살고 있는 현재까지 백 년에 걸친 가족사가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는 화자 강재필이 폭력과 관련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면서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의 생애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 작업이 폭력조직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나 그 세계와의 결별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애를 글로 남기는 작업이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어느 책상물림의 한가로운 족보 정리이듯 여겨지자 할아버지의 생애 정리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을 갖게 된다.


강재필에게 가족은 부끄러운 존재들이다.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역시 알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관동군 731부대에서 하수인 노릇을 하였고, 그 속죄로 좌익의 길로 들어섰다가 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중국어 통역관 노릇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소일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에 비하면 더 보잘것없는 아버지 강천동은 몸집만 클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화자인 강재필과 많이 닮아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강간하여 아내로 들여앉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강재필과 고향으로 온 어머니는 사고로 사람을 죽인 강천동이 감옥살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정신병 초기 증상을 보이며 방구석에서 꼼짝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고 공포심에 사로 잡혀  마흔 살도 못 되어 요양소에서 거식증으로 죽고 만다.


그런 가족 상황에서 강재필은 중학교 때 이미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폭력배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 ‘유전인자’로 인해 폭력적 성격을 가지게 되고, 그런 가족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역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를 이어 되풀이 되는 그들의 인생은 서로 다르면서 닮은꼴로 삼대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원일 선생은 삼대에 걸친 가족사에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이념의 갈등, 아버지가 산업 현장에서 보여준 현대 산업의 그늘진 모습과 최근 문제가 되었던 성인 게임장 ‘바다 이야기’를 내세워 아들에 이르러는 삼대의 역사와 사건을 보여 준다. 이 책 『전갈』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 속에서 삼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분명 사실이 아닌 소설임에도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 그게 김원일 선생의 관록이 아닐까 싶다.


읽고 나니 왠지 꿀꿀한 마음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할아버지가 관동 731부대에 있을 당시, 하얼빈의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하얼빈 상류층 생활과 근교에 있던 관동 731부대의 비교로 설명한 작가의 인용문이 기억에 남는다. 가난과 부는 과연 대물림인가?


오랜만에 아주 묵직한 한국 문학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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