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늘 흥미를 돋운다. 같은 여자로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산 그들 혹은 나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그들은 해내는 것에 대한 동경심이랄까, 아님 위안이랄까. 요부가 되었거나 위인이 되었거나 혹은 죽을 고생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늘 나를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내 어머니와 같은 나이 혹은 내 할머니와 같은 세대를 살아오신 그 분들의 인생을 엿보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자기하기 나름이고 내가 아무리 힘든 일에 부딪혀 좌절 속에 빠지더라도 살아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환경 속,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내가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여자들의 인생을 엿볼 때면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에서 내 삶을 유추해보다가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면서도 매번 이런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삶속에서 나를 찾아보다가 또 잊어버리고를 반복하게 된다.


삼천포의 잘 사는 집 딸로 태어나 소공녀처럼 자라다가 아버지와 오빠를 찾으러 지리산에 올라갔다가 빨치산이 된 고계연 할머니, 그녀는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쪽발이 동상에 의해 거의 다 잘려나가고 국군에게 붙잡혀 모진 일 다 겪고 풀려났지만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경찰관들의 감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면서 자식들 낳아 보란 듯이 키웠다. 그 긴 세월동안 고계연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는 이 짧은 글에도 숨이 턱턱 막히지만 할머니는 그걸 이겨낸 것이다. 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일본군 위안부로 가게 된 김수해 할머니의 탄식과도 같은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이야기는 열네 살에 오빠들을 따라 중국 팔로군에 들어가 죽음의 강이라 불리던 황하강을 건넜던 윤금선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대장정』이란 책 때문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홍군이라 불리던 중국공산당들의 행동에 대해 진짜일까? 하는 의문을 조금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쓴 책이니 그들을 우호 하는 글을 쓴 게 아닐까 했다.(반공교육의 결과는 이처럼 무섭다.- -) 그런데 윤금선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니 그들의 행동이 정말이었던 거다. 그들이 대장정 전에 정해 두었던 규칙들을 팔로군들 역시 그대로 지켰기 때문이다. 아무튼 윤금선 할머니는 그 후에 기공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꼿꼿하게 기공 수련을 하는 모습과 내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면 육체도 그에 따른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나.

 

그 외에 한 달의 인연으로 생긴 딸과 함께 평생을 수절하며 지상엔 없는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최옥분 할머니, 스스로 기생이며, 황진이이고, 혁명적 예술가라고 칭하던 천생 춤꾼 이선옥 등 그들의 태생과 나이, 환경, 삶은 달랐지만 여자로 살면서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강인하고 지독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들 모두 시대를 잘못 타고났지만 그 모든 수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혹은 삶의 대한 긍정과 희망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결국은 그들이 그 모진 삶에서 승리자가 된 셈이다.

 

저자인 김서령은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이다. 그녀가 찾아간 여덟 명의 여자들 중에 50년 넘게 종갓집을 지켜오고 자신을 키워주신 숙모 김후웅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이데올로기와 분단, 일본의 침략과 같은 한국의 근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그 수난을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내 인생은 얼마나 편하고 안락한 것인가?

 

작은 일에도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현대의 여자들에게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힘을 내라며 건네주는 박카스 같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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