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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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내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오른쪽 길은 무척 화려해 보였고,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다들 세련되어 보였다. 왼쪽 길은 화려하기는커녕 칙칙하고 촌스러웠으며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왠지 고지식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을 화려한 길 쪽으로 들여 놓은 나는, 나도 모르게 왼쪽 길을 자꾸만 돌아보았는데, 순간적으로 혹시 저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이미 보았던 것처럼 내 눈에는 너무나 멋지고 화려했기에 그 길을 가는 동안 왼쪽 길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책을 좋아하니 책에 관한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지 관심이 많다. 이 책 『편집자 분투기』는 책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이 암시해주듯이 편집자들의 노력과 그들의 열정이 담긴 책이다. 우리가 매일 환상의 세계로 혹은 가보지 못 한 나라를 갈 수 있고, 가슴 찌릿한 사랑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밤에도 퇴근조차 못하고 열심히 책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책은 편집자로서 20여년을 살아 온 저자가 온전히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기획에서부터 편집까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출판에 관련된 서적이 별로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 출판의 '출'자도 모르면서 출판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한번 해 보겠다고 출판사에 들어가더라도 상냥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도 드무니 이런 책이야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힘이 되는 거다. 

책 한 권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저 책 한 권 만드는데 뭐 그리 어려우랴~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획에서부터 텍스트, 북디자인, 헌사까지...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쉬운 일은 없어 보인다. 독자로서 책을 사면 내키는대로 책죽이기에(함부로 하는) 여념없었던 나로서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난 후에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겠다고나 할까.
 
편집자로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나 출판쪽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지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출판편집자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의 첫 청자聽者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하니 편집일이 배우고 싶으신 분들은 힘을 내시길 바란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책 제목에 대한 거다. 나로서는 리뷰의 소제목도 붙이기가 힘들어서 책 제목을 그대로 적거나, 책 속에 나오는 한 문장을 적는 편인데 장편의 원고를 읽고 그 책에 맞는 그럴듯한 제목을 짓는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오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제목을 그럴 듯하게 적어보리라 했건만, 나는 여전히 책 속의 문장으로 리뷰 제목을 대신한다. 살짝 지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너무나 잘 읽히고 재미가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며칠이 즐거웠다.


그.리.고. 앞서 말한 오른쪽 길은 정말 멋있었다. 그러나 돌고돌아 두 길이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왼쪽 길을 택했다. 그동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돌았나 보다. 발도 못 들여 놓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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