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빗소리에 혹은 우연히 바라본 파란 하늘 속에서 문득 잊었던 옛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추억이란 지나고 보면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내게 아픔을 준 친구에 대한 기억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그랬었지,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그 나름대로 행복 했었구나!’하고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추억이란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추억이 나에게 무슨 신선한 기분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희망이나 활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1980년 초여름에서 1982년 봄까지의 이 년을 즐겨 회상한다. 그 이 년의 추억 속에 푹 젖어드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면 새벽의 빗소리가 좋은 건지, 또는 둘 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긴 하지만…….    p6


화자인 요시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미야모토 테루의『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말 그대로 ‘좋아했던’ 것을 이야기 한다. 이제는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 누구나 한번쯤은 지난 추억을 생각할 때 그런 ‘좋아했던 것’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은 젊고, 조금 무모하고 용기가 있던 그 시절에 말이다. 요시의 말처럼 희망이나 활력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추억이란, 좋았던 것이든 나빴던 것이든 그렇게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게 작은 미소를 던져준다.


미야모토 테루는 네 명의 남녀에게 각자의 짐을 하나씩 짊어지게 하고 그 짐을 그들이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당나귀에게 한 발을 들여 놓고 딴 곳을 바라보는 요코를 포기했다가 다시 끌어안는 당나귀의 마음은 요코의 방황을 끝내고 그 상처를 다듬어 주며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또 세 사람의 우정과 헌신으로 불안신경증이란 병을 이겨내고 의대에 진학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준비를 하는 아이코, 그런 아이코를 요시는 사랑하지만 서로의 행복을 위해 아이코를 떠나보내는 요시의 마음은 사랑하니까 떠나보낸다는 고리타분한 말이 진정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두 여자(요코와 아이코)와 두 남자(요시와 당나귀)의 우연한 동거는 그 우연만큼 다행히도 우리가 늘 보던 그런 관계 속에서의 삼각관계 따윈 일어나지 않고 각자 짝을 맞추면서 시작된다. 처음 보는 남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거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 머리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한 눈에 반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서서히 여물어가는 그런 사랑. 그래서 그 추억들에 대해 감히 ‘좋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꿈을 위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상대가 좀 더 나은 행복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족이상의 배려이고 사랑이다. 그런 배려와 사랑이 있었기에 네 명의 남녀는 보다 나은 선택을 했고 이 년의 동거생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미야모토 테루의 『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담담하게 읽다보면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청춘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살포시 웃음 짓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