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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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사람은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들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330)」

책을 구매하고 한참이 지났다. 에세이니까 하루면 뚝딱, 해치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누구도 아닌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니까 그리고 제목처럼 한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으니 얼마나 많은 나날들이 나의 시절과 함께 떠오르겠는가.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들이...

누군가는 아직도, 라고 말하지만 어떤 일들은 영원히 기억해야할 것들이 있지. 그게 사랑이든 이별이든 그 무엇이라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혹은 이 세계에 일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한 일은 뭔가를 끄적이는 일이었다. 이런 끄적임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게 어떤 글이든, 쉽게 쓰여지는 글은 없다.(8)」

‘쉽게 쓰여지’지 않았으니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글들, 한 편 한 편 ‘읽어내는’ 글들마다 우리가 지나온 그 시절을 돌아보고 떠올리며 긴 숨을 내쉬게 하는, 밑줄을 긋고 문장에 공감하며 또 한참을 생각하다 그만 책을 덮을 수밖에 없는, 그러기를 여러 날이었다. 빠름과 가벼움과 쉬움이 화두인 요즘에 여러 날동안 펼쳤다, 덮었다 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아 그래서 더 좋았던.

「변함없이 눈부신 그 여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아름답지요.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돼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되지요. 모든 것에.” (...) 할머니는 덧붙인다.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봅니다.” 이런 할머니들이 있어 나는 또다시 장래를 희망하게 됐다. 그렇게 해소 나의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웃는 눈으로 선한 것만 보는 할머니가 됐다.(31)」

악을 보고 그 악에 대해 말은 하지만 그 악에서도 선한 것을 찾아내보려는 노력. 침묵이 아니라 뭐라도 끄적이면서 지켜내고 싶은 기억. 그 기억들이 <시절일기>에 담겼고 그 일기를 읽으며..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관계와 사랑, 고통과 삶, 늙음과 젊음, 빛과 어둠, 진실과 망각 그리고 ‘세월’과 애도, 글쓰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긴 독서는 무죄!(-.-) 그 깊이만큼 함부로 쓸 수 없는 리뷰라고나 할까.

「이건 충분히 가능한 마음이리라. 어른들이 이런 가능한 마음을 꼭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소년은 어떤 꿈을 꿨다. 그러니까 소녀의 눈으로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꿈. 가능한 마음들이 저마다 자기부터 이해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런 세상에서, 소년은 그런 불가능한 꿈을 꿨다. 글쓰기에도 꿈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꿈을 꾸기 위해서 작가가 신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신이 될 필요는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98)」

나만 좋으면 되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는 우리도 잘 안다. 비단 글쓰기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럴 것. 그 어려운 걸 해보고 싶다, 는 다짐을 <시절일기>를 덮으며 해보았다. 말은 쉽지,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둘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49)」

「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불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이런 형편인데도 불운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게 다 ‘나’의 사용법을 몰라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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