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기류 미사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기류 미사오(桐生操)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의 전작인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질 않아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소개를 보니 조금 자극적이고 왠지 으스스한 작품들이 제목만으로도 은근히 읽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한다. 이 책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도 죽음을 매혹적이라고 표현한 한국 제목이 눈에 띄고 호기심을 끌게 했는데, 역시 1장부터 죽음과 에로스를 연결시킨 작가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에로스, 욕망, 집착, 자살, 임종 모두 5장의 주제로 분류된 이 책은 장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넣어 신화와 역사, 문학 속에 나오는 많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처음 들어보거나 사실임에도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있어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 1장 죽음과 에로스에 나오는 몇몇 에피소드들은 남자들의 네크로필리아, 페티시스트 같은 성도착에 대한 이야기여서 무척 당황해하며 읽었다. 특히 1957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시체 피부로 여장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지능이 낮고 정신병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그러고 보면 영화나 소설보다도 현실이 더 무서운 게 맞기는 맞는 듯) 하긴 『양들의 침묵』의 버팔로 빌이나 어제 본 영화 「향수」의 그르누이가 영화와 소설에 나오는 페티시스트라 할지라도 결국은 그 이야기들이 현실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2장은 죽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카니발리즘이라고 일컫는 식인풍습에서부터 흡혈귀와 성급하게 묘지에 매장하여 생매장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성급한 매장』과 『어셔 가의 몰락』에 나오는 성급한 매장에 대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롯된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또 현세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한 3장은 사후에 대한 인간들의 상상과 기대, 죽음을 맞는 자세에 대해 알려준다. 유언장, 화장, 프랑스의 지하묘지 카타콤의 유래와 애도법, 장례식, 시체보존법등 죽음의 준비 과정과 죽은 후의 처치는 나름대로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거다.


요즘 한국에서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자살, 자살을 둘러싼 기담이라는 제목의 4장은 그 자살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나온다. 고대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명예를 위한 자살 외에는 죽음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병사가 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택하는 자살이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하는 여자들, 병이나 노쇠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위엄 있는 죽음을 원해서 하는 자살만을 죽음으로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자살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그 명예로운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두 젊은이가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비싼 음식을 시켜 즐겁게 이야기 하면 식사를 하고 코냑에 독약을 넣어 마신 후 계산 할 무렵에 지배인에게 사실은 자기들은 돈이 없으며, 죽기 위해 최후의 만찬을 즐긴 것이라 말하며 디저트로 나온 커피까지 다 마시고 죽어버린 일이나 도박으로 가진 재산을 다 잃자 친구들을 불러 놓고 사자 우리로 직접 들어가 사자에게 물어뜯기는 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며 죽음을 택한 엘메다 자작의 잔혹한 자살, 생방송 중에 권총 자살한 미국의 한 여성 앵커 등 이들이 만약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살았다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했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가혹하게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 장은 임종의 미학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던 잔 다르크에서부터 매독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최고의 낭만파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자유분방한 성생활로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고 결국 고독과 정적을 찾아 떠난 후 고독한 최후를 맞았던 대문호 톨스토이, 사고사로 전설이 된 제임스 딘, 불가사의한 죽음으로 의문의 죽음을 남긴 다이애나 비까지 제목은 임종의 미학이지만 그들 모두 고독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사람들이다. 이렇듯 죽음에 관한 광대한 이야기들을 기류  미사오는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표지에 ‘사람은 사랑을 나눌 때마다 짧은 죽음을 경험 한다‘ 고 작은 글씨로 적어 놓았다. 찾아보니 이 책의 원제는 ‘세계정사대전(世界情死大全)’ 이다. 정사(情死)가 무슨 뜻인가?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을 정사라고 한다. 그 제목에 어울리는 에피소드는 이 책에 나오지 않지만 기류 미사오는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예로 들면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욕망과 에로스를 극한으로 끌어 올릴 때 느끼는 감정과 같다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택한 것 같다.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는 알고 보니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지만 기류 미사오의 말처럼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