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조선풍속사 - 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태껏 내가 읽어온 역사책은 조금만 읽으면 지루하거나 무겁거나 그것도 아니면 음모와 비리가 넘치다가 피를 보고마는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고 두어 장 넘겼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무리 제목이 『엽기 조선풍속사라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웃기잖아, 그래도 우리 역사인데 했다나. ^^

 전편에 나온 『엽기 조선왕조실록이 꽤 독특했었나보다. 저자는 그 책에서 하지 못한 조선, 조선인의 이야기들을 실었다고 하는데 읽는 동안 피식거리며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너무나 리얼한 왕과 신하들의 말투나 생생한 풍경들이 저자의 '신들린 상상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는데 만약 앞 뒤로 진지한 해설이나 설명이 없었다면 난 이 책에 나온 역사적 사실들을 믿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 코믹함에 말이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조선의 풍속사를 알아보면 정말 내가 알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동안 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늘 왕조 중심이거나 이름난 선비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일반인이라고 불리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이야기는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두 4개의 장으로 나눈 이야기에는 조선 사람으로 살아가는 진풍경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조선 사람의 재치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조선의 이야기를 나머지 하나는 안타까운 조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일찍이 정약용이 판서 권엄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을 웃기거나 즐겁게 하는 '끼'가 없어 면신례의 고통을 호소했듯이 조선 시대엔 신참이 겪어야 할 가혹한 통과의례 면신례는 과히, 처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신례의 폐단을 알고 틈이 날 때마다 금지했으나 아직까지도 입학식 때가 되면 불거져 나오는 신입생 환영식에서의 사고는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사람 사는 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일본에서 박대(?) 받다가 조선까지 넘어온 코끼리가 먹고 싸기만 하는 무용지물의 동물로 전락한 후 이 지방 저 지방으로 떠돌다가 결국엔 사람 두 명을 죽인 후 귀양을 간 일화는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조선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조선의 '생화학무기'인 똥의 위력이다. 왜군의 조총에 맞서 똥을 거른 다음 1년 동안 삭힌 금즙, 즉 똥물을 물총처럼 쏘아 왜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똥물을 뒤집어 쓰고 악취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왜군들이 전투력을 상실하게 된 이야기는 그야말로 똥물을 무기로 사용한 선조들의 기막힌 지혜에 웃음과 감탄사가 나온다. 그런데 왜군 역시 사용하던 화학무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춧가루였다. 포르투갈과 교역을 하던 일본은 포르투갈을 통해 고추를 들여 온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조선을 공격할 때 고춧가루를 뿌려 재채기를 유발시켜 수비를 약화시켰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선엔 똥물외에도 고춧가루에 버금가는 화학무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모닥불을 태우고 난 후에 남는 였다. 그러고보면 임진왜란은 조총과 창과 화살, 칼외에도 똥물과 고춧가루과 재 같은 화학무기들이 난무하는 전쟁이었다. 지금에야 무척 웃기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 당시엔 얼마나 심각했을까 생각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화냥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끌려간 여염집 여자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는 것에서 연유되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환향녀를 위한 정부 시책이 어처구니가 없음을 알게 된다.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 있음을 비웃고 더구나 병자호란 때 끌려간 여자들이 돌아오자 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조나 환향녀라는 이유로 못돼먹은 며느리로 낙인 찍혀 쫓겨나거나 목을 매거나 산으로 도피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여자와 아이들이다.

 저자는 이렇게 무겁고 어려운 역사를 나름대로 코믹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역사라면 왠지 골치부터 아프던 사람들이라면 우리와 별다를 것 없어보이는 왕이나 양반들의 말솜씨를 들으며 낄낄거리다 보면 어느새 역사 속으로 들어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대화체의 가벼움이 계속되다보니 좀 거슬리긴 했지만 어차피 그렇게 기획된 책이니 편안하게 읽는다면 즐거운 역사 공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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