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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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악마의 시』를 통해서다. 작가가 그 책에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라고 언급하고 무하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그의 열두 명의 아내를 창녀로 비유하자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살만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일로 인해 살만 루슈디는 유명해졌고 그 유명세만큼 그가 쓴 『악마의 시』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뉴욕 타임즈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악마의 시』를 읽은 후 내가 느낀 점은 도대체 그 책이 왜 그들의 분노를 샀을까 하는 거였다. 현실과 비현실, 끝없이 나오는 작가의 상상력은 읽는 사람의 혼을 쏙 빼 놓을 뿐만 아니라 무수히 쏟아지는 지식들과 은유들은 가끔 무슨 소리인지 헷갈리게도 했지만 정신없이 읽을 만큼 재미도 있었다. 또 독특한 문체와 작가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신화나 이슬람의 전설을 읽는 듯 흥미도 있었기에 그야말로 거침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허구이고 이슬람을 겨냥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형선고까지 내리다니 말이다(이젠 철회가 되었지만). 그래서 작가의 신간 『분노』가 출간되었을 때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 살만 루슈디의 풍자는 한마디로 세계적이다.


이 책『분노』에도 살만 루슈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블랙코미디 같은 이야기, 소설 속에서 쓴 또 다른 소설(이런 소설을 액자 소설이라고 하지). 비꼬고 찔러보고 쉴 새 없이 내뱉는 풍자는 차치하고 한 문장마다 쏟아져 나오는 그의 해박한 지식은 역시 살만 루슈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옮긴이의 <>가 시원찮았으면 책을 읽고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을 만큼 온갖 비유가 문장 속에 나온다. 한 영화의 대사, 어떤 책의 문장, 노래 가사와 지역, 뉴욕에서 유명한 식당에서 최고급 호텔, 약자와 대화중에 툭 던지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단어 하나 조차도 살만 루슈디의 머릿속에서 다 계산되어 나온 거였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니!!’하는 뿌듯함이 넘쳤다나…. ^^;;


분노』는 2000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에서 인형제작자이며 대학교수로 생활하던 말릭 솔랑카가 자신이 제작한 인형에 대해 아내와 말다툼 한 그날 저녁, 자신도 모르게 끓어오른 분노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살해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자 도망치듯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를 더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일 뿐이었다. 디안젤로 부두 야구 모자를 쓴 금발의 아가씨가 킥킥거리며 자신에게 무례하게 말을 거는 것에 화가 치밀고, 같은 건물에 사는 카피라이터의 한심한 질문에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또 이미 천 번쯤은 되풀이 했을 배관공의 기나긴 사연들을 들으며 그의 수다를 참아내기 위해 순환 호흡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간혹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카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더구나 주변에서 ‘콘크리트 살인’이라고 불리는 연쇄 살인이 일어나면서 순간적인 분노로 과음을 하여 정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는 솔랑카는 혹시 파나마모자를 쓴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에 쌓이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미국으로 건너온 솔랑카가 뉴욕이라는 현대 문명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분노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솔랑카가 뉴욕에서 쓴 SF소설 '적자 생존: 퍼펏 킹들의 등장', 흑인인 잭이 백인에 대한 동경으로 빚어낸 어이없는 죽음, 친구인 더브더브의 유명인이라는 신분이 준 실존적 위기로 인한 자살, 영국에서 인형제작자로 일하면서 선풍을 일으킨 ‘리틀 브레인의 모험’의 팬이었다는 밀라를 만나 위험한 장난에 빠진 일,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게 만드는 운명의 여자 닐라를 만나고(닐라의 외모에 넘어가는 남자들의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닐라효과‘라나), 밀라와 다시 웹사이트를 이용한 인형제작에 성공하고, 급기야는 웹사이트 속의 인형들이 등장하는 닐라의 고향 ‘릴리푸트블레푸스쿠’의 쿠테타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여러 형태의 주제로 등장한다. 결국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헷갈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 살인과 폭력, 자살과 인종문제까지 현대문명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분노를 냉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솔랑카가 닐라에게 털어 놓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솔랑카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분노가 어떻게 자라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그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만 루슈디가 비록 뉴욕이라는 도시를 빗대어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모든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을 풍자하며 그 부조리들에 대해 우스꽝스럽게 표현을 하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쉽게 읽을 수 없어서 간만에 정독을 하며 밑줄을 긋고 곱씹으며 읽은 책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살만 루슈디가 전해준 왠지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현대문명에서의 삶이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 쳐들어와 솔랑카처럼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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