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알레산드로 리마싸 지음, 김효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 하워드 진

 책을 읽다보면 '세계'라는 것은 이름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저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민이든 사람의 생각이란 다 똑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구 저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엿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면서 그들의 생각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 <천유로 세대>를 읽는 동안 어쩜! 어쩜!하고 내 일마냥 대공감하며 읽은 것은 소피 컨셀러의 <쇼퍼홀릭>이후 처음이었다. 그럼, 그들의 생각을 한번 들어볼까?

 '밀레우리스티Milleuristi' 천 유로로 한 달을 살아가는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그들은 그 돈으로 먹고 살기 위해 10유로 이상하는 책을 사 볼 수 없으며, 30유로나 하는 연극은 감히 볼 생각을 못한다. 또 음반은 말도 못 꺼낸다. 비싼 레스토랑? 때려죽일 만큼 비싸고, 패스트푸드점은 가 봐야 먹지도 못할 쓰레기뿐이며,콘서트는 모두 40유로는 줘야 하고, 시사회는 대부분 기자들에게 열려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면서 저 높은 곳의 저명하신 분들은 "요즘 젊은 애들들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뭐 관심 있는 것도 없고, 열정도,문화도,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욕구도 없다"며 비난을 한다. 물론 그들은 그게 다 개소리라고 한다. 말했듯이 아무리 하찮은 곳에 간다 하더라도 별 이유도 없이 돈이 들어가는 데  어떻게 감히 관심을 가지겠느냐는 거다. 또,

 수습사원들 혹은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반 백수들까지. 그들이 어디 일하기 싫어서 그러고 살겠는가 그건 아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정직원으로 써 주는 곳이 얼마 없으며 계약직이든 임시직이든 간에 그런 일이라도 할라치면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며 견뎌내야 한다. 또 그렇게 견뎌내면 정식직원이 될 수 있느냐?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수습이라면 난 세 번이나 했어. 두 번은 6개월 동안 공짜로 일해 준 다음 순순히 인사하고 나왔고, 세 번째는 어땠는지 알아? 첫 월급은 없고, 차차 교통비랑 식비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돈 준다는 소리에 1년 계약을 했는데, 수습 만료 10일 전에 이사가 그러는 거야. 내 일에도 만족하고, 계속해서 일해도 좋다고, 그러더니 3일 후에 날 다시 불러서는, 미안하다면서 회사에서 나랑 나머지 수습 세 명 자리에 새 수습사원들 네 명을 넣기로 했다는 거야. 허를 찔렀지 아주."

 저런 일이 어디 이탈리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냐마는 심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이 든 정직원 한 명에게 주는 월급으로 이제 갓 졸업하고 팔팔한 새내기 두어 명 쓰는 것이 훨씬 일 부리기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낫다는 것쯤은 어느 회사에서나 알려진 불문율이 아닐까?
각설하고...

 이 책은 이탈리아에 사는 네 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한 달에 1,000유로(원화로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의 소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실업자가 아니다. 나름대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임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열심히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승진하기 위해 혹은 제대로 된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산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성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 계약직인 클라우디오의 우선 과제는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고 정규직으로 승진하는 것이다. 정규직이지만 자신의 적성과 경제적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알레시오는 어떤가? 영화지의 고정 칼럼을 낙하산 타고 내려온 국세청 모모 씨의 아들에게 빼앗긴 것에 분개하고 있다. 또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수년째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무능력한 마테오 그가 과연 졸업을 한 후에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열심히 이력서를 보내지만 여전히 시간당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베이비시터로 자리 잡을까 걱정하는 로셀라 역시 자신 같은 인재를 알아주지 못하는 이 사회에 불만이다. 이렇듯 그들 네 명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칫솔 하나에 덜덜 떨고, 가스비 과다청구에 싸움을 하고, 담배피우면서 이 담배를 끊으면 한달에 얼마를 절약할 수 있을까 따위를 생각하기도 하고, 로또 복권 한 장에 온갖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소득이 적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유쾌하고 즐겁게 보낸다. 이것이 안 되면 저것으로 해보고 저것이 안 되면 또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어차피 견뎌내야 할 일이라면 불평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인드야말로 먹고 살기 힘든 '천유로 세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 거다.

나 역시 지금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 보자고 시작했지만 쉽지는 않다. 더구나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회를 점점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들처럼 천유로 세대도 아니고 젊은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삶은 백번 이해가 갔다. 세대가 다르고, 패기도 사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내겐 힘이 되니까 말이다.

 그들 역시, 어떻게 보면 그들의 삶은 정말 우울하고 냉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렇다할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현실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최대한 살아보려는 그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긍적적인 마인드, 절망보다는 희망을 안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젊음의 패기, 그것이야말로 그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천유로 세대'들에게 필요한 살아갈 이유,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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