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이야기 속엔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과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읽는동안 내 나라에서, 내 가족들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걸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감히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몇 해 전 태국에 있는 친구의 언니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도 불법으로 태국에 건너와 일을 찾는 미얀마나 캄보디아인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임금탓에 수퍼마켓에서 계산하는 직원외에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둘 씩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뿐아니라 웬만한 한국 가정엔 가정부를 두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가정부가 미얀마나 태국 주변 국가에서 돈 벌러 온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 돈으로 기껏해야 15만원. 그걸로 고국에 있는 동생 학교보내고 살림에 보태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돈은 겨우 만 원 남짓이다. 물론 이건 태국의 예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자국보다 더 나은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마찬가지로 다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과 일본에 불법으로 건너간 것도 그렇고, 요즘 중국 동포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그들 나라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 명목으로 한국행을 택해 건너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날에는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마다 그런 현상이 있었지만 난 이 책을 들춰보기 전까지는 그 현실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그런 것은 그저 돈을 벌겠다는 어른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엔리케처럼 엄마를그리워하다가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여정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뻔했다.

 중앙아메리카, 브라질과 멕시코 사이에 끼어 있는 가난한 나라들 온두라스,콰테말라등 라틴계 아메리카인들의 처절한 삶은 그 모든 것이 정치적 부패와 가난함에 기인하다고 본다. 더구나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삶은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당하면, 혼자 아이를 맡은 그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가장 손쉬운 돈벌이라는 게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겨진 아이들은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가 되는 거다. 차라리 고아였다면 포기를 할텐데 고아가 아닌 고아일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삶이란 짐작하지 않아도 뻔하다.

 엔리케 역시 이혼한 엄마가 엔리케를 온두라스에 두고 미국으로 돈을 벌러갔다. 엄마 라우데스는 자기가 없어도 가족들이 엔리케와 누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는 엄마들 모두 생각하듯이 딱 2~3년만 돈을 벌어 온두라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라우데스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3년이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국하고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삶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음으로 그만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가족과의 약속은 점점 그 신빙성을 잃어갈 뿐이었다. 또 온두라스의 고향에선 그 나름대로 떠나온 집 근처에  엔리케의 아버지가 살고 있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살고 있었지만 엄마만큼 엔리케를 돌보지는 못했고 엔리케는 엔리케대로 자신의 모든 불행을 엄마 없는 탓으로만 돌려버렸다. 결국 엄마가 돈 벌러 가고 없는 아이들이 최후에 선택하듯이 엔리케마저도 미국으로 엄마를  찾으러 갈 결심을 한다. 헤어진지 11년이 지난 후에 말이다. 

 그 여정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돈을 주고 브로커를 사서 뚝딱하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면 무슨 걱정이겠냐마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을, 그것도 돈도 없는 가난한 아이에겐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었다. 뒤에 그들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생각은 '자기들의 고국보다 훨씬 덜 계급 지향적이고, 초라한 옷을 입어도 업신여기지 않으며 걱정없이 금목걸이를 하고 다닐 수 있다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만큼 중앙아메리카의 치안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다. 그러니 그런 곳을 통과해서 미국으로 가야만 하는 여정은 목숨을 담보로 가는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물열차를 그것도 지붕에 올라타야하는 위험한 일은 고사하고 가는 곳곳의 도시에서 부닥치는 이민국 직원과 부패한 경찰들, 갱단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강도와 강간, 폭행뿐 아니라 살인까지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그들에게 엔리케와 같은 이주민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아무리 이주민들을 보호해주는 주민들과 단체가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더구나 기껏 그 위험을 이겨내고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까지 가서 눈앞에 미국을 바라보고 있어도 미국으로 들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엔리케가 미국을 가려하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 그리움으로 엄마를 만나지만 그건 그것으로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그런 모든 위험한 일을 감수하고 미국으로 가려하는 것일까? 왜? 그 대답은 아마 우리도 알고 있다.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우리 부모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주었던 '가난의 대물림,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서 내 자식만은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고...

 부모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잘못되는 법은 없다. 그건 동양이나 서양이다 매 한가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늘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너무나 간단한 이유때문일 거다. 엄마없이 돈을 풍족하게 쓰는 것 하고 엄마와 같이 가난하게 사는 것하고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이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이 책은 중앙아메리카의 해체된 가족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존재와 이주민들의 삶, 그리고 미국의 이주민에 대한 대처들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하여 엄마랑 엔리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고 끝나는 픽션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 또 어던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고국을 떠나지 않고 가족들과 헤어지지않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게될 날을 기원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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