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번역소설을 읽으면 정확한 시대를 알 수가 없다. 책 읽기에 앞서 작가 소개와 책 소개를 읽고 책이 출간된 년도나 작가의 나이라도 안다면 물론 정확하게 알고 읽지만 그런다고 해도 읽다가 보면 50년이 지난 작품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시대를 넘어서서 현재와 동일시하며 책을 읽게 된다. 과거라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문학은 어떤가? 예로 들어 1930년대의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고 하자. 문체부터 다르다. 내용면에선 현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들도 삼각관계에 빠지고 취직을 못해 고민하고 여름이면 피서를 간다. 하지만 어색하다. 읽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난 그들의 문체를 현재 쓰는 말로 다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랬다간 작가가 무덤에서 뛰쳐 나올 일이라고 한다.- -;;

 그렇다면 내가 읽은 미시마 유키오의 원서나 얼마 전에 읽은 <보트 위의 세 남자> 같이 오래된 책들의 원서는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원서도 우리 문학처럼 문체가 다르겠지? 다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매끄럽게 현재 말로 바꾸는 거겠지? 무척 궁금하다. 나중에 번역하는 친구에게 제대로 한번 물어봐야겠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암튼. 미시마 유키오의 저 오래된 책 <비틀거리는 여인>를 읽으면서 이 불륜 소설이야말로 현재 등장하는 많은 불륜소설들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미시마 유키오는 그 당시 노벨문학상에 거론될만큼 유명한 사람이었고,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신이 받을 상이 아니었다고 굉장히 미안해했었다는 일화도 있다.(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을 때 미시마 유키오는 나체사진이 공개되어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나..)  

 이 책을 낸 출판사의 블로그를 검색해서 이 책을 내게 된 배경을 읽었다. 원서의 제목이 <미덕의 흔들림>이라고 하는데 몇 년 전 나온 영화를 본 후에 미시마 유키오가 이런 책도 다 썼구나 해서 낸 책이란다. 난 사실 미시마 유키오가 꼴통 보수주의자인지도 몰랐고 할복자살한 줄도 몰랐다. <금각사>라는 책 제목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쌓아야할 내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꽤 잘 생겼다.^^;; 그래서 띠지를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띠지에 그의 얼굴이 찍혀있기 때문이다.ㅋㅋ 대부분 작가의 얼굴이 나오면 난 싫어하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이미지하고 이 책에 나오는 쓰치야하고 꽤나 잘 어울려서 혹시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 물론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딴 생각을 한다는 게 웃기지만 (미녀는 괴로워가 달리 히트했겠냐고..^^;)

 아무튼..쓸데없는 글을 쓰다보니 내가 뭔소릴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삼천포로 빠질 줄이야...- -;;; 아, 생각났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였다. 원서의 번역시 문체에 대한...사실 우리 문학도 좋은 이야기들 참 많다. 하지만 모든 문학들이 출간 당시 그대로의 단어를 사용하다보니 왠지 고리타분한 생각도 들고 재출간 되어도 전집 형태로만 나온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조사 하나도 틀리게 쓰면 안 되는 일이니..

 언젠가 친구랑 이효석의 <화분>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소설을 읽으면 정말 놀랍다. 과연 그런 일이 1930년대에 있었다니..자매간의 애증과 근친상간까지 요즘 읽어도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또 암튼..어차피 쓸데없는 이야기였으니 마무리도 대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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