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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사이 - 마사이 전사의 아내가 된 백인 여인
코리네 호프만 지음, 두행숙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문명인이 아닌 부족인으로서 살아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짝 엿보았다. 문명을 받아 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아마존의 부락민들을 보면서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라고 여전히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는, 보고 읽는 것은 가능하나 그곳으로의 체험은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를 그곳으로 보내주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하얀 마사이>를 읽고 싶었던 것은 백인이 그것도 여성이 아프리카에서 마사이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였던 것인데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에서 눈으로 체험한 부족인들의 현실로 인해 더더욱 하얀 마사이였던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은 지역적 특성이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얀 마사이>의 코리네는 운명적으로 르케팅가, 즉 자신의 남편이 될 마사이 전사를 알아본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언어도 필요가 없다고 했든가? 코리네가 르케팅가를 사랑함에 있어 그 요소들은 필연적으로 작용한다. 오로지 르케팅가, 그 마사이 전사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르케팅가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운명이라고?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코리네의 동생인 자비네가 같은 마사이 전사 에디에게 호감을 갖듯이 그저 놀아줄 상대로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번씩 나름대로 코리네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코리네의 사랑을 확인한 르케팅가와 그녀를 인정하자 그들은 결혼을 한다.
그 둘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기껏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오케이'혹은'노프로블럼'이 다다. 르케팅가나 코리네의 영어 수준이 비슷하니 한 사람이 그 나라 말을 확실히 알아도 감정 상할 일이 많을 텐데 그 둘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프로블럼' 그들에겐 '사랑'이 있었다.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문화도 엄청 다르지만 그들은 이해하면 산다. 적어도 결혼 후 2,3년은 그랬다. 아내를 서넛 두어야 하는 마사이 전사는 아내를 위하여 혼인 신고를 하고(지금 생각하니 그건 코리네가 비자받는 귀찮음을 해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문명 국가인 스위스에서 살다 온 코리네는 내가 글에서 읽고 상상한 것 보다도 더 작고 초라한 움막에서 먹고 살았다. 또 결혼식날 여자에게 할례의식을 해야 함에도 르케팅가의 재치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고 르케팅가와 먹고 살기 위해 코리네는 전 재산을 투자하여 그곳에서의 정착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그들이 살아온 문화는 달랐기에 서로에 대한 오해는 쌓이고 쌓였다. 하물며 같은 말을 하고 사는 부부들도 한번 오해가 생기면 그것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말도 재대로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그 일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쌩뚱맞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오로지 르케팅가만을 믿고 온 코리네와 그런 코리네를 받아 들이는 르케팅가. 그 둘 중에 누가 더 이해심의 폭을 넓혀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에게 온 코리네를 위해 르케팅가는 무조건 이해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로지 르케팅가만 믿고 왔는데 코리네를 의심하는 르케팅가의 태도를 코리네가 마사이 전사는, 마사이의 남편들은 원래 그러니까 하며 이해해야 하는가?
이 책은 마사이 전사의 아내로 산 한 여자의 짧은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소재가 특이하고 평범한 사고력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그만큼 궁금했다. 하지만 솔직히 난 그들의 사랑에 불만이 많다. 코리네의 르케팅가에 대한 사랑은 차치하고라도 겨우 4년 만에 끝장날 결혼을 위하여 코리네가 감수한 그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먼저 사랑이라고 다가서고선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도망치다시피 케냐를 떠난 코리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르케팅가는 무엇인가? 물론 르케팅가의 의처증이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던 아내와 딸이 말 한마디 안 하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생각을 하면 르케팅가가 받는 상처는 어떨 것인가?
사실 내가 좀 비약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겨우 4년이라는 것에 마음이 상한다. 코리네의 수기로 말미암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읽고 있는 것은 감사하지만 왠지...르케팅가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올 11월이면 코리네의 14년 간의 스위스 생활이 나온댄다. 코리네는 딸 나피라이와 함께 14년 만에 르케팅가를 찾아 간다고 한다. 이 또한 코리네의 편에서 쓴 이야기이겠지만 그 책에서 르케팅가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친김에 <오래된 미래>를 읽어보려 한다. 오지에 사는 부족들...그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므로 그들의 생활과 문화가 궁금하지만 순수한 그들이 문명자들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