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한 이치
코니 팔멘 지음, 이계숙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주는 게 아니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부러지는 것,이제까지의 습관을 버리는 것,
파괴하는 것, 잃어버리는 것,
특히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알 만큼 명백하다. 즉 '뻔하다' 이 책 <자명한 이치>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젊고 열정적인 주인공 마리, 그녀가 세상의 법칙을 통제하고 있다는 남자들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철학적인 연애소설이다. 그녀의 거듭되는 남성 편력은 남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지적이고 철학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주인공 마리의 열정이 들어 있다.

 <자명한 이치>는 모두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리는 각 장에서 각각의 남자를 만난다. 그녀의 미래에 의미심장한 예언을 해주는 점성술사를 필두로 간질병 환자, 물리학자, 신부, 철학자를 만나지만 삶의 법칙을 깨닫지는 못한다. 그러다 첫눈에 반하게 되는 한때는 유명했으나 잊혀진 예술가 루카스와의 만남을 통해 마리는 사랑의 구원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루카스와의 관계 역시 실망으로 이어지고 그 실망을 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찾아 간 사람은 간질병 환자의 아버지인 정신과 의사이다. 그 의사에게 토해 놓는 마리의 과거는 그동안 그녀가 왜 남자들을 통해 삶의 법칙을 이해하려 했는 지를 알게 된다.

코니 팔멘은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책 전반에 걸쳐 철학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고 문학서이기 때문이다. 코니 팔멘은 마리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철학적 사유, 글쓰기와 소통의 문제, 문학과 철학의 차이, 남자와 여자,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로서는 이 독특한 연애소설이 보여 주는 철학적인 문체 속에서 살짝 살짝 엿보이는 코니 팔멘의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마리가 사랑에 빠지고 다가오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주 흥미로워서 책을 읽는 내내 마리가 과연 자아발견을 할 것인가? 하고 궁금증을 느끼게 한다.

 코니 팔멘의 책은 처음이었고 알랭 드 보통의 철학적인 연애사를 읽고 받은 감동이 그녀에게도 느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철학과 사랑이 어찌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렇듯 명쾌하고 매력적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코니팔멘은 이 책에서 남녀의 사랑을 전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하지만 남녀의 사랑 이전에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갈등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독특하고 철학적인 코니 팔멘의 책을 펼치면서 최초로 느낀 점은 다시 읽어야겠다 라는 것이었지만 책을 덮은 후에 이 책은 '다시'가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줘야겠다 라는 것으로 마음이 바꼈다. 그리고 내맘에 드는 작가를 만났을때 항상 그렇듯..그녀의 책이 한 권 더 내 곁에 있음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는지...

 '뻔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뻔한' 러브 스토리가 '뻔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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