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
함민복 지음 / 풀그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시를 잘 모르고 더구나 시인들도 잘 모르지만 시인이란 참 느긋한 존재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들의 글은 대부분 아름답다. 읽다보면 그 글에 폭 빠져 책 속으로 들어갈 지경이다. 방송인 이금희는 함민복의 글을 일컬어 밥 끓는 냄새 같이 평온하다 하고 박민규는 지구를 돌고 돌아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은 '함민복을 읽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젯밤에 난 비록 지구를 돌지는 않았지만 그 구수한 밥 끓는 냄새가 나는 '함민복 읽는' 행복한 일을 맛보았다. 맛있었냐구?

 충청도 저어기 두메산골(어감이 꽤 옛날이야기 같지만) 실외 안테나가 텔레비젼인줄 알며 살던 그곳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가정 형편 조사'에서 손 한번 들어보지 못해 억울해 하는 아이였다. 또 다 커서는 절밥을 먹겠다고 큰소리 치고 나가서는 쫄쫄 굶다가 결국은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고만 철부지 어른이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머니와 동문서답 전화하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강화도 저어기 갯벌 근처에서 여든 넘은 어머니에게 참한 며느리 한 명 데려오지 못해 고향에도 못 내려가는 불효자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그는 즐겁다. 시를 쓰고, 석양주를 마시고, 고욤나무 아래에서 계절을 다 볼 수 있으니 뭐가 부러우랴

 이 산문집은 그 모든 것들의 이야기다. 어머니에게 불효하는 자식의 마음이 들어 있고, 네 평 정도되는 수첩만한 텃밭을 가꾸면서 어머니의 사랑도 깨닫고, 제 2의 고향이 된 강화도 외진 마을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의 인정도 들어 있다. 뱀이 무서워 보자마자 얼떨결에 뱀꼬리 잘라 놓고 걱정이 늘어진 겁쟁이지만 그 뱀을 보며 시를 짓는 천생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함민복하면 가난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인터뷰도 싫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가난하다는 생각은 스스로 만족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만큼 느긋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강화도의 생활이 편안해서 시가 잘 안 쓰여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시가 될 수 있는 시인...가난은 꼬리표에서 달아났어도 시인이라는 꼬리표는 평생 그의 곁에 머물 것이므로 이제는 배불러 '긍정적인 밥'을 먹는 그를 기다리련다.

 그의 구수한 밥은 역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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