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여인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레드빛 드레스가 바람에 날리는 듯하고 몽환적인 모습의 여인이(보기엔 소녀같아 보이지만 ^^;)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있는 이 책의 표지는 보는 순간 눈을 확 끌었다. 더군다나 <비틀거리는 여인>이라는 제목이 주는야릇한 느낌은 호기심 자극하고도 남았다. 미시마 유키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굉장한 사람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1957년에 출간 되었으니 올해로 50년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옛날의 고리타분한 연애소설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원작의 힘인지 역자의 힘인지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

주인공인 세쓰코는 스물여덟 살이며 천부적인 관능미를 가지고 있다. 아주 엄한 문벌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소녀 시절에 사랑한 남자가 두어 명 있었지만 결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 했으며 남자아이도 낳았다. 결혼생활은 3년이 지나면서 남편과의 잠자리도 뜸해지고 일상이 무료해졌지만 또래의 여자들을 만나 영화보고 쇼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사는 것이 훌륭한 가정 집안에서 자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살짝 부족한 삶.

쓰치야는 세쓰코가 결혼 하기 전 장난처럼 키스를 한번 한 사이다. 그 키스는 너무나 형편없어서 졸렬한 느낌까지 가졌으나 그 느낌이 오히려 그녀의 기억 속에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도 우연히 쓰치야를 자주 만났다. 무도회에서, 레스토랑에서, 호텔 로비, 공항 대합실 등등. 쓰치야는 스무 살 무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항상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과 소극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쓰치야를 보면서 자신의 아들인 기쿠오도 그처럼 성정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어느날 쓰치야가 세쓰코에게 만나자고 이야기 했지만 세쓰코는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쓰치야가 집으로 쳐들어 올 용기가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오래도록 그를 기다렸지만 쓰치야는 오지 않았고 세쓰코는 쓰치야를 경멸했으며 하루종일 화가 나 있는 동안 세쓰코는 자신이 쓰치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후 세쓰코와 쓰치야는 연애를 한다. 세쓰코가 바라는 연애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 되는 공상적이고 도덕적인 연애다. 하지만 인간사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잦은 남녀의 만남엔 결코 공상적이고 도덕적인 연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부탁해서 쓰치야와 여행을 떠나고 기쿠오를 보면서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쓰치야와 만남은 끊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겐 갈수록 거짓말이 늘었지만 한번의 거짓말 후엔 마치 우물의 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늘 가정으로 돌아간다. 더구나 이 책이 출간된 년도을 생각한다면 그러고도 남음이다. 마지막에 세쓰코는 쓰치야에게 결국 보내지 못하고 찢어버린 편지에서 다른사람을 불행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는 않으며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가운데서도 쓰치야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견뎌나가겠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 사랑에서 철모르고 순진한 세쓰코는 쓰치야에게 놀아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책 <비틀거리는 여인>은 제목처럼 사랑에 비틀거리는 여인의 묘사를 굉장히 멋스럽게 해냈다. 평판 좋지않은 불륜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세쓰코의 순진하고 잘 배운 집안의 여자다운 처신을 보여줌으로써 불륜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 명의 작가를 내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그의 전작들에 관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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