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30년 만의 휴가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공경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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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일에 얽매어 사는 현대인 누구나 <여행>에 대한 환상은 가득할 것이다. 그게 휴가로든 말년의 퇴직으로 인한 것이든 삶에 또 다른 활력소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나도 늘 <여행>을 꿈꾼다. 시간이 난다면 세계 일주를 하리라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야지. 프루스트가 보랏빛 장갑을 늘 끼고 찾았던 파리의 리츠호텔, 오드리 토투가 나왔던 그 물랑 드 카페,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오모, 요즘 들어 가장 가고 싶은 곳 프라하 등등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다 다녀 볼거야. 언젠가는 나도 꼭!!! 하면서...

 앨리스 스타인바흐, <볼티모어 선>지에 근무하며 1985년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이 멋진 여자가 어느 날 휴가를 계획한다. 매번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못하던 그녀가 15년간 남의 이야기만 써다가  이제야 그녀 자신의 사연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여행을 방해했던 많은 장애들(집은? 고양이는? 병이 나면 어떡하지? 휴직이 받아 들여지기나 할까? 등등)을 어느 순간 극복하자 앨리스의 휴가는 꿈처럼 이루어졌다. 30년 만에 이루어진 멋진 휴가가 말이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들어 있지 않은 이 특별한 여행서는 젊은 여자가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아이도 다 키우고, 남편도 없는 싱글인 장년長年의 여자가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파리와 런던 이태리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 갔다. 구경만 하고 바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머물러서 보내는 여행. 이런 여행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여행일 것이다. 

 파리에서는 차가 아닌 도보로 다니며 파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카페 뒤 마고, 카페 드 플로르, 또 가슴을 셀레게하고 소녀의 마음을 갖게 해 준 한 남자를 만났다. 그들은 생트 샤펠의 색유리 사이에서 영혼이 만난 느낌을 받았고 생 루이 섬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느릿느릿 자콥 거리를 산책했다. 그들의 산책 모습에서 <비포선셋>의 장면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런던에서 그녀는 좋은 친구 셋을 만났다. 갑자기 아픈 그녀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돌봐주었고 그들과 같이 찾아 간 시싱허스트의 정원은 각자의 마음 속 열정을 이야기 해 주었다. 앨리스의 시싱허스트는 글쓰기였다. 뭔가를 언어로 우아하게 표현하려는 욕망. 킹스 로드에서 아침을 먹고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에서 전시한 러브레터를 읽으며 그들의 모습을 상상했고, 브레즈노즈 칼리지에 숙박하면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마지막 여행의 종착지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대형 웨딩 케익처럼 생긴 밀라노의 두오모를 보았다. 보헤미안 라이프의 중심지이기도 한 브레라라는 곳에 반하면서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딸아이 같은 캐롤린을 만났고 베니스에서 그녀는 삶이 자신을 재단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삶을 재단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앞으로도 또 그럴 수 있을 지 궁금해했다. 또 중세마을 라벨로에서는 사람이 아닌 도시에 대해 첫눈에 반하는 멋진 경험을 한다. 그리고 시에나의 서점, 아솔로의 묘지를 끝으로 앨리스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지금껏 읽어 본 여행서와 많이 다른 이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한 매력을 또 한번 강렬하게 느꼈다. 패키지 여행에서도 맛 볼 수 없고 친구들과 같이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여행서였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여행을 맛 보리라 다짐하게 하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거야. 내가 영원히 지닐 거야.
이 순간의 기억을...베니스에 내리는 비의 기억을.
영원히 내 것이 될, 비 내리는 다른 곳을 상상하기시작했다.
스페인 계단에 쏟아지던 비, 파리에서 카페의 차양으로 들이치던 빗줄기,
시에나 광장에 내리던 비, 슬론 거리에 있는 숍들의 진열장에 튀기던 빗방울.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안개에 싸인 베니스를 바라보고, 서둘러 비행기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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