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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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케이블에서 '왓 위민 원트'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이름있는 광고회사의 잘나가는 기획자 멜깁슨이 해고 당하긴 직전 감전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읽게 되어 벌어지는 나름 코믹한 영화다.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고 황당한 일인지...

잠자리에 들면서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을 읽었다. 이제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멋내기 좋아하는 조카를 떠올리며 읽는데 오호~여기선 옷들이 말을 한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이 있나! 다 귀찮아 다 귀찮아 하다가 그냥 잠이 들어 깬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아인 화들짝 놀라면서 외친다. "이런, 세상에! 교복이 나를 입고 있잖아" 물론 제 말에 멋쩍어 머리나 긁적이고 말았지만 그 후로 아이 귀엔 옷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신통해라.

" 그래, 맞아. 확실히 교복이 널 입고 있어."라고 속삭이는 녀석을 무시하기로 하는데 친구의 연락으로 쇼핑을 가게 된다. 비록 엄마에게는 시내에 나가 문제집을 산다고 거짓말했지만 친구들과의 쇼핑은 즐거움이고 일탈이다. 이제 한창 멋을 부리는 아이에게 옷장의 옷이란 하나같이 입을 만한 옷이 아니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엄마 스타일의 옷이란 죄다 구시대적인 옷들. 그래서 아인 친구네 집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담긴 옷을 맡겨두고 쇼핑이나 친구들 만날 때는 옷을 바꿔 입는다. 약간 나이들어보이고 살짝 여성스러운 옷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인 변신한다고 믿는다. 어릴 때 본 <세일러 문>처럼. 이제 세일러 문 변신을 한 아인 친구들과 동대문을 훑는다.

그 또래 아이들답게 질투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찾기에 바쁘다. 그런데 무시했던 그 녀석이 동대문가지 따라와서 아인 귀찮게 하더니 이젠 동대문의 옷들이 아이에게 속삭인다. 날개옷이라 불리는 친구가 망사 레깅스와 리본 레깅스 사이에서 망설이자 " 유모~,난 저 애의 통통한 허벅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딱딱하고 미끈한 마네킹 다리는 질렸어. 저 허벅지를 입는다면 고귀한 광택이 흐르는 나, 리본 레깅스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저 허벅지를 천박한 망사나 밋밋한 단추 레깅스 따위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레깅스가 사람의 허벅지를 입는다니...사람이 레깅스를 입는 것이 아니고?

그 뿐이 아니다. 모자를 고르는 친구 요원K를 두고 모자들이 불평을 늘어 놓는다. 네모인 머리엔 벙거지가 안 어울린다는 둥, 카우보이 모자는 자기에게 머리를 들이댄다고 소릴 지르고 비니는 아이에게 부탁까지 한다. 요원K에게 자긴 안 어울리니 쓰지 않도록 해 달라고...또 친구들은 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다투는지..아인 왜 맘에 안드는 옷을 친구가 좋다고 한다는 이유로 거금을 주고 사는지 좌충우돌, 뒤죽박죽 정신은 없었지만 쇼핑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인 자신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묻는다. '어느 게 진짜 나일까?'

옷이 내게 말을 하고 내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는 기발한 상상력이 흥미롭다. 이제는 너무나 까마득하여 알 수 없었던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가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향수를 자극한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나도 한번 외쳐 봐야겠다. "이런, 세상에 옷이 나를 입고 있잖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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