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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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작품이 우리나라에 나왔다. 이 작품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요 근래에 한국에서는 하루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작품을 출간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하루키 스타일의 정수인 소설책을 만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은 대체로 재미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진중하기 않고, 가볍다는 이미지도 보유하고 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작품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한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중편소설에다. 전혀 다른 스토리를 가미해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소설을 탄생시켰다. 다른 두 가지의 스토리가 병행에 번갈아 써 내려가며 두 이야기가 마지막에 합체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은 대체로 가독성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몽환적이고, 또한 독창적이며, 환상적인 스토리까지 겸비하고 있어 앞장과 뒷장을 들락거려야 되므로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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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원더랜드>작품의 줄거리는 계산사인 '나'는 포유류 구개를 연구하고 있는 생리학자를 만나게 된다. 노인은 자신의 실험하고 있는 수치들을 계산하기 위해 계산사인 나를 고용했다. 노인은 나에게 일각수의 두개골을 선물하는데. 이후 일각수 두개골을 노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손녀로부터 할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할아버지 손녀와 함께 할아버지는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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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야기인 <세계의 끝> 작품의 줄거리는 한 번 들어오면 두 번 다시 마을을 나갈 수 없는 마을에 도착한 나는 문지기에게 나의 그림자를 내어준다. 문지기로부터 매일 도서관에서 두개골의 꿈 읽는 일을 배정받고, 도서관에서 홀로 지키고 있는 여자로부터 꿈 읽기 방법들을 배운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나의 그림자는 나에게 가을이 끝나기 전까지 마을 지도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한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 벽을 따라 숲속에 발을 들이는 일들이 찾아졌고, 숲속을 왔다 갔다 하던 어느 날 몸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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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힌트를 찾아보기 위해 꼼꼼하게 들여다보았으나 정확하게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와 <세계의 끝 작품의> "나"가 동인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가는 문장도 매끈하게 이어진다. 작품의 중간중간 느닷없는 시점에 성적인 문장들이 계속해서 출현하는데, 읽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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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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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더위를 가시게 해줄 만한 작품이 나타났다. 일본 미스터리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 마리 유키코의 <이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사'라를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묶어놓은 연작 단편집이다. 저자는 이사 시 필요한 끈. 상자 같은 도구나 벽, 문, 수납장, 책상 같은 집안에 배치되어 있는 친숙한 사물들을 소재로 이용하며 독자들을 오싹하게 만들어버린다. 옮긴이 김은모는 <이사>작품을 마리 유키코의 입문용으로 적극 추천한다. 처음 읽어본 마리 유키코 작품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대담한 전개에 빠른 속도감까지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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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기요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전 주인이 살인범' 오타 게이라로'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기요코는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열리지 않는 비상구에 갇히는 꿈을 꾼다. 기요코는 포털 사이트에 오타 게이타로 석방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는데, 잠시 후 자신이 살고 있는 현관에서 열쇠를 구멍에 꽂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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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장>은 나오코는 여덟 번째 이사 준비를 하기 위해 어디에도 둘 곳이 마땅치 않은 물건들을 가득한 현관 근처, 천장 아래 위치한 붙박이 수납장을 정리하기 위해 골판지 상자를 구하러 편의점에 간다. 나오코는 수납장을 정리하면 할수록 쏟아져 나오는 짐들로 인해 미궁에 빠진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야마시타는 홀로 살고 있는 나오코의 엄마와 결혼할 마음을 가졌다. 어느 날 기점으로 야마시타가 나오코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엄마는 이사를 했다. 새집에 보금자리를 틀고 짐 정리를 마칠 무렵 야마시타 씨가 부패한 시체로 발견됐음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 엄마는 또다시 이사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간단한 사무와 전화 담당이라는 업무의 내용과 시급 천 엔에 끌려 미나미는 그곳에 취업하게 된다. 상사인 아쓰코는 냉장고는 마음대로 사용 가능하지만 냉동실에 있는 것은 우리거야 라는 말을 남긴다. 사무 용품을 찾기 위해 서랍장을 뒤지던 미나미는 전임자가 두고 간 편지를 읽게 된다. 마나미는 냉장고에 들어 있던 고기의 정체를 알게 되는 <책상>, 사토 유미에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규모 배치전환이 되어 3층에서 7층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유미에의 박스만 의도적으로 도착하지 않는 <상자>, 나는 폭력을 휘두르는 옆집 남편을 신고한다. 다음날 옆집 부인은 손에 무언갈 쥐고 나를 찾아온 <벽> 등 작품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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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도시 전설 중에서도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를 실어놓았다. 저자는 괴담들을 늘어뜨려놓으며 단순히 미스터리라는 재미에 그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들의 불안, 인간관계의 회의감, 인간의 욕망을 녹여내 같이 그림으로써 이사에 담긴 작품들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복선이 많으므로 눈 크게 뜨고 소설의 전개 과정을 잘 따라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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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맨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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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의 <플라스틱 맨>은 3년 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전 대통령의 퇴진 시위에서부터 출발하여 탄핵 선고, 다음 대통령의 선거가 준비되던 동안의 시간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실제와 달리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는 설정 구도를 담고 있어, 작품을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지 약간 혼돈스럽다. 작품 안에서 국정 농단의 당사자와 배후인 실명이 언급되고 퇴진 시위에서 시민과 경찰과 빚던 마찰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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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퇴진하지 않으면 매주 한 사람씩 죽이겠다는 음성이 담김 USB가 언론사에 뿌려진다. 범인은 날짜를 지정하지 않아 협박을 실행에 옮겼는지 안 옮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하경감은 조사 중 USB에 담긴 목소리가 억양이 없다, 는 것을 신기해하며, 협박범에게 플라스틱 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시사 일간지 유튜브로 플라스틱 맨 음성이 담긴 USB가 공개된 이후 '내가 플라스틱 맨을 알고 있다'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파면이 가결된다. 이후 12명이 죽고 5명이 크게 다치는 버스 폭발 사건을 비롯하여, 탄핵 심판에 참여했던 한정수 헌법 재판사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고, 성당 예배당에 폭탄이 터져 많은 이들이 다치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또한 행정부와 사법부는 태도를 바꾸며, 언론에서는 여론 달래 기성 보도가 쏟아졌다. 플라스틱 맨을 쫓던 하경감은 종로경찰서 경비계로 부서 이동 명령이 떨어지고, 플라스틱 맨으로부터 "대통령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코끼리에 밟혀 죽어라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시민들이 또..라는 음성이 담긴 USB가 도착하는데,


"대통령은 국가를 사유화했다. 경찰은 집 지키는 개가 되었고 그 말단에 그녀가 있었다. 시민은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국가의 세입자가 됐고, 나가지 않으면 집 지키는 개들이 나서서 물어뜯을 것이었다." (P208) 힘 권력에 의한 냉소적인 문체와 사회에 대한 음삭한 해학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하경감은 검고 거대한 것에 대해 제어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자신이 경찰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하경감의 인물을 내세워 탄핵이 통과된 지금의 우리 사회의 삶의 모습이 어떠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탄핵 전과 탄핵 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전히 편해 공생을 취하는 자들이 잔존하고 있지만,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플라스틱은 틀에 넣어 만들다라는 뜻의 고대 성어다. 플라스틱맨은 어떠한 신념도 없이 사회 전반에 있는 어중이 떠중이들로 지칭할 수도 있고, 매일 반복되는 시간을 살아가며 견디고 있는 자로도 해석 가능하다. 오랜만에 가독성 좋은 작품을 만났다. 백민석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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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 완벽하지 않은 날들을 살면서 온전한 내가 되는 법
변지영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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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것도 저것도 힘들어할까? 어떤 하루는 내 모습이 괜찮았다가. 또 어떤 하루는 괜스레 내 모습이 못마땅하다. 내가 가진 취약점을 발견하게 되면 맞설 용기보다 회피하기 바쁘다. 타인에게 나의 민낯을 적나라에게 까발려지는 일은 생각만 해도 무척이나 부끄럽고, 불편한 일이다. 나는 로봇이 아니라 생각과 판단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가장 무례한 사람이 되는 일을 자처하고 있다.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작품에서는 나와 비슷한 분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주며, 해결법을 제시한다. 짧은 아포리즘으로 구성되어 있고, 짧은 호흡으로 읽기에도 편하다. 심리 에세이지만 전문용어들이 난무하지 않고, 내용이 간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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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7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에서는 스스로가 어떤 단어로 규정짓는 것을 멈추고, 따뜻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수용할 것을 권한다. 2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법>에서는 자기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임을 인정하는 것, 또한 경험하는 내용에 치우치기보다는 맥락으로 상황을 볼 수 있기를 말한다. 또한 억지스러운 자기애나 우월감으로 씁쓸한 내용을 덮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고치길 권한다. 3부 < 그 사람에게서 나를 본다>에서는 나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볼 때. 타인의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여러 관계도를 잘 이어가려면 어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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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욕망은 밖에서 오는 것>에서는 욕망은 밖에서 온 것이며, 욕망의 타자 성과 모방성에 무지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다룬다. 5부 <마음은 원래 비어 있다>에서는 낚임에 대처하는 방법과 생각의 내용에 속지 말고, 내가 만들고 있는 '거리'혹은 '틈'에 주목하기를 권하며, 동시에 마음과 생각을 잘 다스리는 방법에 관하여 소개한다. 6부 <더 이상 의지 때문에 애쓰지 말 것 >에서는 자기조절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본다. 동시에 어떤 일에 대한 각자의 해석과 반응은 심리적인 거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7부 <나는 매일 조금씩 선명해진다>에서는 조금 더 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좀 더 나은 삶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취약성이 없다면 애초에 관계라는 것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취약하기에 우리는 연대를 맺는다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따뜻한 호기심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심리적인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을 때 조금씩 선명해질 수 있다는 책의 결론이 마음에 든다. 이 작품의 내면의 나와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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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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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부모님의 보유한 재력이나 환경에 의해 인생의 출발점이 다르다. 시작의 출발점은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작품에서는 재개발을 둘러싼 주거로 인한 차별을 그린다. 지난 2009년도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 중에 화재가 발생하여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의 단면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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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 남일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달청에서 근무한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늘 빠듯한 형편이었고 홍의 어머니는 이따끔씩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것은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놀고 있는 딸 홍이였다. "네가 가겟집 얘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서 놀고 있어?라며 나무란다. 아버지가 경매에 낙찰된 집이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 홍의 가족은 자연스럽게 남일동을 벗어난다. 홍의 아버지는 남일동에 살았던 시절을 완전히 잊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중앙동에서만 살아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머니 역시 달산 사태 이후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남일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며 냉랭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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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가 있던 홍은 알레르기 약이 꽤 효험이 있는 남일동에 있는 약국에 들렀고, 남일동으로 이사 온 싱글맘 주해와 수아를 만나게 된다. 주해는 특유의 긍정함과 단순함,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해는 집 앞 골목에 가로등을 세우기 위해 구청을 일곱 번이나 찾아갔으며, 남일동에 위치한 달삼 꼭대기까지 마을버스정류장을 신설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청원서를 받으러 다닌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처럼 굴었다. 하지만 주해는 남일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 남일동에 빛을 들여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다. 수아는 남일동에 산다는 이유로 거리로 보면 가까운 중앙동 쪽 초등학교가 아닌 버스를 타고 네댓 정거장을 가야 하는 미성 초등학교에 입학 배정을 받게 된다. 어느 날 남일동에 재개발 추진 위원회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조합원 사무원으로 근무하게 된 주해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면서 모녀는 남일동을 떠나게 된다. 주해가 떠나자 다시 폐허처럼 남일동은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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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배정과 관련해 입학 전에 이사를 가는 일들은 빈번하게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아파트의 브랜드나 혹은 평수에 따라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들이 범상치 않게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은 내가 가진 자본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구조상 천만 원 가진 사람이 이천만 원을 버는 일보다. 백원을 가진 사람이 천만 원을 버는 일은 더 힘들다. 도로 하나를 두고, 수천만 원이 오르고 내리는 현실 앞에 재개발은 희망의 빛줄기다. 수아가 난민으로 불리는 것을 알면서도 재개발 사업에만 집착한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책임보다 재개발 추진위로부터 배제를 당할까 봐 걱정하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해를 보며 홍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홍은 수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모와 오버랩 되고, 알레르기가 다시 도진다. 어찌 되었든 미혼모에다 주거 공간도 없는 주혜보다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홍이다. 집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현 사회의 모습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혜진 작가의 책은 늘 이렇게나 마음속 써늘함이 몰려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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