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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부모님의 보유한 재력이나 환경에 의해 인생의 출발점이 다르다. 시작의 출발점은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작품에서는 재개발을 둘러싼 주거로 인한 차별을 그린다. 지난 2009년도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 중에 화재가 발생하여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의 단면을 다룬다.
홍은 남일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달청에서 근무한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늘 빠듯한 형편이었고 홍의 어머니는 이따끔씩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것은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놀고 있는 딸 홍이였다. "네가 가겟집 얘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서 놀고 있어?라며 나무란다. 아버지가 경매에 낙찰된 집이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 홍의 가족은 자연스럽게 남일동을 벗어난다. 홍의 아버지는 남일동에 살았던 시절을 완전히 잊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중앙동에서만 살아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머니 역시 달산 사태 이후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남일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며 냉랭하게 말한다.
알레르기가 있던 홍은 알레르기 약이 꽤 효험이 있는 남일동에 있는 약국에 들렀고, 남일동으로 이사 온 싱글맘 주해와 수아를 만나게 된다. 주해는 특유의 긍정함과 단순함,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해는 집 앞 골목에 가로등을 세우기 위해 구청을 일곱 번이나 찾아갔으며, 남일동에 위치한 달삼 꼭대기까지 마을버스정류장을 신설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청원서를 받으러 다닌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처럼 굴었다. 하지만 주해는 남일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 남일동에 빛을 들여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다. 수아는 남일동에 산다는 이유로 거리로 보면 가까운 중앙동 쪽 초등학교가 아닌 버스를 타고 네댓 정거장을 가야 하는 미성 초등학교에 입학 배정을 받게 된다. 어느 날 남일동에 재개발 추진 위원회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조합원 사무원으로 근무하게 된 주해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면서 모녀는 남일동을 떠나게 된다. 주해가 떠나자 다시 폐허처럼 남일동은 변해간다.
학교 배정과 관련해 입학 전에 이사를 가는 일들은 빈번하게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아파트의 브랜드나 혹은 평수에 따라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들이 범상치 않게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은 내가 가진 자본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구조상 천만 원 가진 사람이 이천만 원을 버는 일보다. 백원을 가진 사람이 천만 원을 버는 일은 더 힘들다. 도로 하나를 두고, 수천만 원이 오르고 내리는 현실 앞에 재개발은 희망의 빛줄기다. 수아가 난민으로 불리는 것을 알면서도 재개발 사업에만 집착한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책임보다 재개발 추진위로부터 배제를 당할까 봐 걱정하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해를 보며 홍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홍은 수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모와 오버랩 되고, 알레르기가 다시 도진다. 어찌 되었든 미혼모에다 주거 공간도 없는 주혜보다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홍이다. 집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현 사회의 모습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혜진 작가의 책은 늘 이렇게나 마음속 써늘함이 몰려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