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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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시리즈 서른 번째 작품은 최제훈 작가의 <단지 살인마>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소 정신적 질환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카피캣 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최제훈 작가는 자아분열증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듯하다.

작품의 줄거리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절단된 시신 한구가 발견이 된다. 이후 오른손 새끼손가락 약손가락 포함 두 개가 잘린 시체가 등장하고, 가운뎃손가락을 포함한 세 개가 잘린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손가락 네 개가 잘린 네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다. 전업 투자자인 장영민은 패턴을 투시하는 숨겨진 혜안을 지녔고, 덕분에 투자업계에서 상당한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어느 날 살인마에게도 어떤 패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 장영민은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살해되고 있는 패턴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라는 첫 번째 계명의 희생자는 보스를 바꾼 조직원이었다. 현재까지 다섯 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장영민은 자신이 찾아낸 패턴과 다섯 번째의 희생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섯 번째 희생자의 장례식장을 찾아 확인한다. 다섯 번째 희생자로부터 자신이 찾아낸 패턴과 일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영민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청소년 시절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고, 복수를 하기 위해 학교폭력 가해자인 양승범을 찾는다. 양슴범은 택시를 운행하고 있었는데, 손님으로 가장해 그의 택시에 탑승한 후 그를 살해한다. 장영민은 살인마로 위장하기 위해 양승범의 여섯 손가락을 자른다. 이후 군대에서 제대하는 남자친구를 둔 승희와 몰디브에 다녀오는 길에 임신 27주 차인 임산부가 일곱 번째 희생양이 된 사실을 알게 된다. 장영민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전화번호와 살인마라고 적힌 편지가 한 통 도착하는데 과연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빠른 서술과 십계명에 의해 살인이 진행된다는 소설, 연쇄 살인마의 뒤에 숨어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는 풀룻만으로도 탄탄하다는 생각을 품었는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 플롯에 입이 딱 벌어졌다. 살의. 살인을 통해 발현되는 욕망의 생경한 맨 얼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누군가 우리에게 해를 가했을 때 살의 혹은 똑같은 복수를 하는 행위가 과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아니면 문명사회에 단죄로 묻는 것이 더 옳은 것인지를 묻는다. 만약 똑같은 복수를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로는 법의 처벌이 무섭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연쇄 살인마는 장영민은, 장영민은 손동식이라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을 탄생시키며 작품은 마무리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 역시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문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적인 생각이 덧붙여져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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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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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오가와요코의 장편소설 <침묵 박물관>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육체를 잃은 영혼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박물관 기사가 수집하며 느끼게 되는 공포와 불안감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과연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흥미로운 사건으로 풀어내고 있다.

"나"는 노파가 세우려는 박물관에 기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노파의 양딸인 소녀, 저택을 관리하는 정원사와 가정부를 만나게 된다. 나는 소녀와 함께 마을을 구경하던 중 사각형 털가죽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머리만 내놓고, 망토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침묵의 전도사를 만나게 된다. 노파는 우주의 섭리를 의해 움직인다. 과거의 세탁실이었던 수장고는 꽤 넓은 공간이었지만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의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노파는 마을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훔치거나 도난품이었다. 노파는 이제 이일을 박물관 기사인 '나'에게 위임한다. 그러던 어느 날 109세 전직 외괴 의사가 사망하자 노파는 나에게 그의 유품으로 귀축소 수술 전용 메스를 가져올 것을 지시하고, 나는 병원 잠입에 성공하며 임무를 완수한다. 나는 소녀와 함께 중앙공원을 구경하던 중 폭발음이 나자. 쓰러져 있는 침묵의 전도사를 발견하고는 그의 털 가죽을 훔친다. 50년 전 마을에서는 호텔 방에서 창녀가 살해당했는데,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유두가 그려내진 상태의 시신이 연이어 마을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나는 죽은 이들의 유품을 구하기 위해 살았던 곳, 근무하던 곳들을 어슬렁거리게 되면서 경찰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 나는 과연 침묵 박물관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가독성이 좋으며 인간의 욕망을 크로테스크하게 표현한다. 다만 작품에서 조금 아쉬웠던 대목은 관계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령 예를 들면 노파는 소녀를 왜 입양하게 되었을까 하는 대목처럼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다. 박물관 기사인 화자 처음에는 유품을 훔치는 데 있어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간다. 작품 수집을 위해 훔치거나 도난을 저지르는 행위가 과연 도적적으로 정당할까? 마을 사람들은 침묵의 전도사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면 그 비밀이 영원히 지켜진다고 믿었다, 화자 역시도 공포와 불안감을 누르지 못하고, 침묵의 전도사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인간이 고뇌와 갈등을 겪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나는 만약 내가 생을 마감한다면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될만한 유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해당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적이 생각이 덧붙여져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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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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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작가라고 불려오는 손원평 작가의 <프리즘>이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 역시 감동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예진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3층 완구회사에 근무하는 예진은 처음에는 우연이었지만 지금은 계획적인 도원과의 만남이 설렌다. 이들은 아무런 애깃거리없이 안 뜨거워요?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예진은 도원을 홀로 짝사랑 중이다. 도원은 예진과 지금 간격이 좋다고 생각한다. 제인은 "이스트 플라워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빵을 직접 굽는다. 제인은 현조와 병원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이혼 후 지금은 섹스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라고 있다. 호계는 진열과 청소 제인을 보조하며 일하는 중이다. 예진은 한때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오픈 채팅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고, 오프모임에 참석한다. 하지만 오프모임의 방장이 바뀌는 순간 오프모임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야행 인간들이 주고받는 고독한 단어들을 엿보곤 한다. 오랜만에 오프모임에 참석하게 된 예진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자신이 아끼던 수첩을 잃어버린다. 수첩을 호계가 줍게 되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연극 공연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 네 사람, 도원은 공연이 끝나자 제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제인은 미소로 화답한다. 한때 이들은 연인과 친구 사이의 경계선상을 오고 간 적이 있었다. 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원이 가계로 찾아온 사실을 예진에게 말하자. 예진은 도원을 향한 마음을 접는다. 도원과 제인은 몇 번의 조심스러운 만남이 있은 후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호계는 예진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때 예진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한철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호계는 마음이 어수선하다. 또다시 찾아온 불면의 밤 예진은 왜 삶은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일까 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도원에게 전화를 걸어 호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기기 시작한다. 이후 도원과 재인이 헤어지게 되는데, 과연 이 네 사람이 복잡하게 얽힌 사랑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살면서 주어지는 인연과 우연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간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받은 상처들이 나를 관여하고 지배하며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발현된다. 이 책에 나오는 네 주인공은 조금씩 남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아픔들이 있다. 도원은 아내와 사별 이후 사람과의 관계도에서 친밀해지는 일보다 자신이 고독하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예진은 아버지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동생처럼 여기던 송아지를 팔아버린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 짧은 연애만 하다 연이어 사랑에 실패한 그녀는 이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택해보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고 만다. 호계는 바쁜 무모님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되고, 피가 섞이지 않는 할머니 손에 키워지는데,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계는 아버지에게 난생처음 돈을 빌리게 된다. 아버지는 호계에게 자신에게 갚아야 할 돈이라는 다짐을 받아냈고, 그렇게 해서까지 할머니는 도와야 하겠느냐? 엄마의 말의 온도에 상처를 받은 호계는 연을 끊는다. 이후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남들에게 들어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제인 역시도 어렸을 때 동생을 잃게 되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끊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을 통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며,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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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도둑
해나 틴티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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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성장 두 가지 키워드를 모두 담고 있는 해나틴티의 장편소설 <착한 도둑>작품이다. 뉴옥 타임스에서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었으며 뉴옥타임스 북리뷰, 워싱턴 포스트, 샌프라시스코, 크로니클, 커커스리뷰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성 안토니오 보육원에 왼팔 손목 부분이 봉합된 흉터 자국과 푸른색 실로 R, E, N, 알파벳 세글자가 수놓은 옷과 함께 버려진 렌은 어느 덧 열 두살 소년이 되었다. 그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거나 신부가 돈을 받고, 군인들에게 아이들의 양육권을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들릴 떄마다 왼쪽의 손목 흉터가 가려웠고. 가려움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건을 훔쳤다. 어느 날 자신이 렌의 형이라며 푸른 눈을 가진 남자 벤저민이 나타나고, 이들은 보육원을 떠나 그래스턴 마을로 향한다.

마을로 향하던 도중 벤저민은 말을 훔치게 되고, 렌은 벤저민의 자신의 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왕년에 학교 선생이었던 톰을 만나게 된다. 톰은 신부에게 받은 렌 책을 제퍼슨 서점에 팔아버리고, 렌은 그틈을 타 시집을 슬쩍 감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벤저민과 톰은 크게 기뻐한다. 이들은 먼지와 흙이 묻은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무덤 약탈을 감행해 치아도 한 움큼 모은다. 렌은 이죄에 대해서 하느님이 어떤 벌을 내릴지 충격과 공포에 떨게 된다. 치아를 팔러간 벤저민과 톰은 치과의사 바위스로부터 해부를 위해 시체 한구당 100달러에 매입한다는 의사 선생 이야기를 듣게 되고. 노스엄블리지로 떠나게 된다.

이들은 샌즈 부인이 운영하고 있는 하숙집에 머물게 되고, 렌은 시체를 매입하는 닥터 밀런을 만나게 된다. 닥터 밀턴은 하루 이틀을 넘기 않은 신선한 상태의 시체 네 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벤저민과 톰은 삽을 들고, 교회 묘지를 찾아가 시체를 마대에 넣은 후 타고 온 마차의 수레에 실어 날랐다. 렌은 수레에 실은 마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마대 하나에서 자주색 슈트를 입은 돌리가 배고프다며 묶어 놓은 포대를 뚫고 나왔다. 청부 부탁을 받고 온 돌리는 여관 계단통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충격으로 실신한다. 여관 주인은 죽을줄 알고 관을 주문해 넣어버린다. 자초지종 설명은 듣게 된 렌은 돌리와 친구가 된다. 살인자였던 돌리, 사기꾼이자 약장수, 무덤 약탈, 시체 절도까지 하고 있는 벤저민과 톰, 왼쪽 손이 없지만 이들을 망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렌, 과연 이들의 앞날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고조되는 서스펜스로 탁월한 몰입력을 선사한다. 특히 렌은 악행을 저지르는 일에 가담하면서도 이 죄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어떤 벌을 내릴 실까 하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하고, 살인을 저지른 돌리에게 회개애햐 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복기하는 자세를 취한다. 시체 도굴에 가담하지 않는 돌리는 버리는 장면과 골상학 연구를 위해 시체를 매입하려는 닥터밀턴의 모습은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의와 감동,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 감추어진 사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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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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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인지 나는 엄마라는 단어로부터 생성되는 이미지에 관한 환상의 기대치가 높은 편이다. 백수린 작가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작품의 모녀관계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다. 작품을 읽는 내내 눈물샘이 그치지 않다. 나는 백과사전에 친애하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검색해보았다. 친밀히 사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예쁘장한 단어를 작가는 제목에다 두 번이다 가져다 썼을까?

작품의 줄거리는 엄마의 전화로부터 시작한다. 스물두 살이었던 나는 진로를 바꾸기 위해 잠시 휴학 중이었다. 학사 경고를 받은 전력과 맞물려

엄마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 거라 어림짐작한다. 불분명한 나의 삶의 노선과 다르게 분명한 삶은 살아온 엄마는 지방대학의 토목공학과 교수이자. 심각한 워커홀릭이었다. 그런 엄마를 대신하여 혼자 지내는 할머니를 몇 달간 돌봐드리라는 내용이었다. 일방적으로 나를 할머니 집에 유배 보내려는 사실이 서운하면서도 할머니와 생활이 싫지는 않다.

그 무렵 할머니의 폐는 수술이 무의할 만큼 암세포에 점령 당해 있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침이 잦은 할머니를 걱정할 뿐이다. 할머니는 1972년 황해도 제령에서 태어나 내기에 의해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고 여러 번 유산 끝에 아이 둘을 낳았지만 둘째로 태어난 아들은 열다섯 살 때 죽고 만다. 나의 유년 시절은 미국으로 유학을 간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 손에 자라났다. L의 사고사 죽음 이후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졌다. 엄마는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마치 지인을 집을 방문하듯 과일이나 주스 세트 같은 것을 사가지고 왔는데 노쇠한 할머니가 신과일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엄마와 할머니 관계 역시 껄끄럽다. 나는 할머니를 돌보며 알들 살뜰 챙기지만 오히려 위안을 받는 쪽은 나였다. 나는 할머니와의 생활과 이야기, 비슷한 경험을 통해 엄마의 삶을 헤아리게 되고 그것은 엄마와의 소통 연결 고리가 된다.


이 작품은 알짜배기 구성으로 되어있다. 우선 나와 할머니의 관계는 매끄럽지만 할머니와 엄마와의 관계, 엄마와 나와 관계는 껄끄럽다. 자칫 엄마가 지닌 기질이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는 부분이 미숙한 인간이라 치부될 수도 있지만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즉 자신의 부모님의 꿈을 실현해 주기 위한 고달픈 여정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며 자신의 상흔들을 조금씩 마주한다는 설정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나의 남자친구이자 남편인 '강'의 인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놓는다. 나는 내밀한 이야기를 강에게 털어놓지만 강은 무심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자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무심하게 건드리고 만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모조리 이해하기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복날이면 할머니는 자신의 친구들과 삼계탕을 먹으며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날 같이 보낼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을 한다. 이상하게 나는 그 문장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쉬운듯하면서도 어려운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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