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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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중 당신에게는 특별한 날이 있습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생일 혹은 기념일을 지목할 것이다. 은행나무 바통 시리즈 08 (셋 세고 촛불 불기>작품에서는 여덟 개의 특별한 날을 소개한다. 첫문을 열고 있는 김화진의 <축제의 친구들>은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내적 성장을 겪게 되는 진주의 이야기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루'가 작업실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진주는 괴로워한다. 작업실이 사라진 후 작업실 멤버인 규민을 다시 만난 이후 전개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김화진의 특별한 날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몰입이 가장 잘 되는 작품이었는데, 내가 특별하고 좋은 사람일 거라고 타인들이 나를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유하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은 서울 고독사 박물관에 면접을 보러 간 윤호의 이야기다. 담당자의 부재로 인해 '고독과 죽음'이라는 전광판이 붙어 있는 전시장으로 둘러보게 된 윤호는 이모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모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이모를 찾아갔으나, 배신에 이른다. 윤호는 고독사 방지 목적으로 개발된 올리를 파괴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발돋움하였다. 윤호의 '다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박연준의 <월드 발레 데이>은 삶은 포기했지만 발레를 포기하지 않은 죽은 무용수의 이야기다. 박연준의 특별한 날은 '종일'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여러 고비를 겪은 후 실력까지 두루 갖추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작가님의 시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인해 읽는 내내 마음이 울컥하였다.

서고은의 <위드 걸스>은 프리랜서였던 나는 신당을 찾아간다. 어릴 때 엄마가 애완동물 가게를 하는 바람에 동물들이 죽은 것을 많이 본 나에게 명화 아씨는 사령과 수호령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선주는 순찌(강아지) 임시 보호를 하고 있었는데, 순찌를 입양하기 위해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다. 나는 입양자 선정이 되지 않은 이유로 선주가 입양 신청서 내용을 수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순찌가 떠나며 모든 것을 원상으로 복구하며, 서고은의 특별한 날은 그저 살아내고 있는 오늘이 돌이켜보면 어떤 날이 될 것이라 말한다. 송섬의 <껍질>에서는 365일 중 3월 13일 하루만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가 이희주의 특별한 날은 유리가 전학 온 3월 2일이었다.

타성과 무력감에 지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은 단순하고 신실하게 살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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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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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저자의 < 그녀를 지키다> 작품은 2023년 콩쿠르상과 2023년 프낙 소설상을 수상하였다. 작품은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라는 남자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오랜만에 600장이 넘는 벽돌 책이었지만 융단폭격 같은 전개와 풍부한 이야기보따리로 인해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지만 과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수도원에 기거는 서른 두 명은 수도사들은 82세 나이로 숨을 거두려고 하는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영면을 기다리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가 버둥거리며 말을 하였고, 자신의 일생을 회상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각가였던 아버지가 망치 끝을 내려칠 때마다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아이는 반응을 한다. 그녀는 아기가 조각가가 될 거라고 장담하며 아이의 이름을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로 짓는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게 된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조각가인 삼촌 알베르토에게 보내진다.

미켈란 젤로라는 이름이 싫었던 그는 부모님이 오래전 자신에게 붙여준 미모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알베르토 삼촌은 미모와 함께 피에트라달바라는 마을에 공방을 인수한다. 피에트라달바 마을은 오르시니 귀족 가문이 있었고, 알베르토는 가문의 일을 떠맡게 된다. 지붕수리 중 미모는 오르시니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와 조우하며 이들은 점차 가까워진다. 미모는 왜소증을 앓고 있었지만 위대한 조각가가 되는 꿈을 위해 비올라가 도와주고,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진 비올라를 위해 미모가 도와주기로 이들은 서로 맹세한다. 삼촌 알베르토의 속임수에 인해 피렌체 공방을 쫓겨나게 된 미모는 피렌체 뒷역에 머물던 서커스단에 합류한다. 우연히 프란체스코를 만난 미모는 엘베르토가 자신에게 공방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프란체스코로부터 듣고 바티칸 정원 한복판에 있는 교황을 위한 여름 별장을 개보수하는 작업을 맡으며 피에트라달바로 돌아간다. 미모는 다시 비올라는 만날 수 있을까?

미모와 비올라의 진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축을 이루며 서사를 이끌어가지만 중간중간 조각가로서의 성공 여부, 그가 만든 피에타 석상에 관한 소문들.

이탈리아의 근현대사 부분인 무솔리니의 파시즘 이야기까지 적절한 배치 구성에 읽는 독자는 열심히 행복한 마음으로 이끌려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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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바통 7
이종산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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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테마 시리즈 바통의 일곱 번째는 빙의물 테마소설집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작품이다.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니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7명의 작가가 빙의물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빙의라는 주제로 인해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방향, 에피소드와의 조우를 꿈꾸었지만 작품에 수록된 작품들은 낯선 곳으로 인도한다. 다채로운 빙의물을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첫 문을 여는 이종산의 두 친구는 아등바등 살고 있는 예은과 부모님 덕분에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지원과의 우정 이야기이다. 친한 사이였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 지원이 자기만의 세계에 깊게 빠지게 되자 예은은 지원과의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예은은 지원의 초대로 제주도로 향하고, 더욱더 선 너머의 세계로 가버린 지원을 맞닥뜨리게 된다. 친구에 대한 부채감과 여자가 목을 매서 죽었다는 일화를 가진 지원 집 앞에 서 있던 나무가 단초가 되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글과 개인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이 맞물려 여운이 길게 남았다. 조시현의 「크림의 무게를 재는 법」크로데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영혼은 수크림이라 말한다. AI 안젤리카에 의해 모든 인간들은 컴퓨터에 다운된다. 몸이 없어지고 영혼만 남게 된 나진은 연인이었던 마디를 생각하며 편지를 적는다. 살아생전에 gpt에게 말을 걸었던 마디와 나진 그리고 대화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배운 안젤리카를 자신의 일부로 봐야 하는지 나진은 혼란스럽다.

지구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기생 쌍둥이가 태어난다. 기생 쌍둥이 중 상대적으로 더 크고 정상적인 몸을 가진 아기를 '자생체'로, 더 작고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아기를 '기생체'로 불렀다. 시간이 지나 자생체와 기생체의 입장이 뒤바뀌고 공생을 하기 위한 각자의 고생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호정의「 물결치는 몸 떠다니는 혼」이다. 사는 게 너무 외롭고 괴로울 때 상념에 잠긴다. 부랑자는 지구라는 몸에 잘못 빙의된 영혼이라 생각하고, k는 이런 삶이 진짜 내 것일 리 없다. 이번 판은 연습이다. 생각한다. 박문영의 「덮어쓰기」는 키아라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삶 전체가 조작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정수읠의 「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강렬한 서사적 밀도를 뿜어낸다.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작품은 마무리된다. 삶의 조리 없음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게 인간이다. 인생이라는 게 한없이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 인생과 관련된 문장들을 길어올리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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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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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자주 꿈을 꾼다. 꿈의 주된 내용은 과거에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올곧은 사람은 아니지만 색깔이 짙은 사람이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 사람들과는 꽤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지만 나와 결이 다른 주변부 사람들과 마찰음은 생각보다 잦았다. 상흔의 치료에 소홀했던 나는 마음이 꽤 곪아있었나 보다. <바움가트너>는 정원사라는 뜻을 가졌다. 인간은 뿌리내린 나무이자 동시에 나무를 관리하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곧게 뻗어가는 나무 가지들은 한 인간이 한 생애 만나는 사람들과 인연 혹은 추억을 의미한다. 정원사가 나무를 돌보지 않는다면 과연 나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움가트너> 작품은 폴 오스터 작가의 작품이다. 폴 오스터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뉴욕 3부작, 빵 굽는 타자기, 달의 궁전 등 많은 작품들을 출간했다. 2024년 향간 77세 나이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투병 중에 집필한 <바움가트너>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작품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그들의 이야기가 가지치기 형식으로 뻗어나간다.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는 아니지만 굉장한 여운과 묵직함을 선사한다. "종말이 왔을 때, 적어도 자기 글에 쓸 문장을 마지막으로 애써 끄집어 내다 심장이 멎는 위엄을 부여받기를 "(084) 자신이 쓴 문장처럼 살다가 간 저자였다.

작품 내용은 바움가트너는라는 성을 가진 70대의 노년의 남자의 이야기이다. 10년 전 아내였던 애나는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애나의 죽음 이후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속옷을 갰다가 다시 개고, 다시는 보지도 못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집에 처박힌 채 생활을 이어나간다. 애나는 독립 번역가이자 프리랜서 작가였으며 종종 자신의 글을 썼다.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40년의 기간에 걸쳐 쓴 미출간 원고를 살피며 출간을 하기도 하고, 애나의 과거를 마주한다. 노년기에 해당하는 바움가트너의 아직 살아있으나 까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운전대의 신비>를 집필하면서 아직 생각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한다. 그는 뒷마당에 나와 앉아 생각이 나는 대로 내버려둔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이 되고, 장기라는 말과 함께 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년에 이르러서야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올 때쯤 뿌린 내린 자신의 나무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 그루터기를 잃은 상실의 고통은 크기는 개인마다 다르나 인간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도 돌아갈 수도 없게 되는 때가 '상실'을 겪은 후가 아닐까 싶다. 바움가트너는 상실의 고통 속에 그대로 남겨진 한 인간의 안간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깊은 애도의 방식을 선보였다. 생을 잘 살아야지라는 말보다는 남아있는 생을 잘 마무리해야지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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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철학
지카우치 유타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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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의 이동

이 작품은 증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소중한 사람과 맺는 관계들은 돈으로 살수 없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증여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주위에 증여를 하는 사람이 없고 자기 자신 역시 주체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면 자칫 고독에 빠지기 쉽다. 증여라는 새로운 말과 개념을 이해하고, 증여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세계의 구조와 삶을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폐 끼치지 않고 착실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사회를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증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환의 논리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사회를 이유로 꼽았다. 증여는 사람과 사랑을 이어주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힘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옭아매 관계를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왜 공부를 안 하니? 네 학원비를 누가 내주는 줄 알아?" 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간다면 증여에서 교환으로 변모하고 만다. 그러므로 저자는 증여자 정체가 들키지 않아야 올바른 증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증여가 반드시 언제나 수신처에 닿지 않을 수 있음을 덧붙인다. 증여를 건네받은 수취인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발신인은 윤리와 지성을 요구하는 증여론을 던진다. 과거에 받았던 증여를 깨닫기 위해서는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와 같은 상상력이 필요하며 더불어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말한다. 건전하고 따뜻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증여로 세계의 빈틈을 메워 가는 대안을 제시하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증여의 특성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번역 또한 매끄러웠다. 작품을 읽기 전에 증여는 단순히 일회적 행위라 여겼으나 지카우치 유타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작품을 통해 나도 모르게 받았던 증여들을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불어 증여를 이어나가는 중요성을 배우며, 개인의 증여가 사회구조를 작동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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