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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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자주 꿈을 꾼다. 꿈의 주된 내용은 과거에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올곧은 사람은 아니지만 색깔이 짙은 사람이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 사람들과는 꽤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지만 나와 결이 다른 주변부 사람들과 마찰음은 생각보다 잦았다. 상흔의 치료에 소홀했던 나는 마음이 꽤 곪아있었나 보다. <바움가트너>는 정원사라는 뜻을 가졌다. 인간은 뿌리내린 나무이자 동시에 나무를 관리하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곧게 뻗어가는 나무 가지들은 한 인간이 한 생애 만나는 사람들과 인연 혹은 추억을 의미한다. 정원사가 나무를 돌보지 않는다면 과연 나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움가트너> 작품은 폴 오스터 작가의 작품이다. 폴 오스터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뉴욕 3부작, 빵 굽는 타자기, 달의 궁전 등 많은 작품들을 출간했다. 2024년 향간 77세 나이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투병 중에 집필한 <바움가트너>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작품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그들의 이야기가 가지치기 형식으로 뻗어나간다.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는 아니지만 굉장한 여운과 묵직함을 선사한다. "종말이 왔을 때, 적어도 자기 글에 쓸 문장을 마지막으로 애써 끄집어 내다 심장이 멎는 위엄을 부여받기를 "(084) 자신이 쓴 문장처럼 살다가 간 저자였다.

작품 내용은 바움가트너는라는 성을 가진 70대의 노년의 남자의 이야기이다. 10년 전 아내였던 애나는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애나의 죽음 이후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속옷을 갰다가 다시 개고, 다시는 보지도 못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집에 처박힌 채 생활을 이어나간다. 애나는 독립 번역가이자 프리랜서 작가였으며 종종 자신의 글을 썼다.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40년의 기간에 걸쳐 쓴 미출간 원고를 살피며 출간을 하기도 하고, 애나의 과거를 마주한다. 노년기에 해당하는 바움가트너의 아직 살아있으나 까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운전대의 신비>를 집필하면서 아직 생각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한다. 그는 뒷마당에 나와 앉아 생각이 나는 대로 내버려둔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이 되고, 장기라는 말과 함께 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년에 이르러서야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올 때쯤 뿌린 내린 자신의 나무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 그루터기를 잃은 상실의 고통은 크기는 개인마다 다르나 인간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도 돌아갈 수도 없게 되는 때가 '상실'을 겪은 후가 아닐까 싶다. 바움가트너는 상실의 고통 속에 그대로 남겨진 한 인간의 안간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깊은 애도의 방식을 선보였다. 생을 잘 살아야지라는 말보다는 남아있는 생을 잘 마무리해야지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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