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디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최승자>
한때는 나도 힘이 센 중력으로 나를 주저앉게 만들며
일진광풍처럼 기어이 휘몰아치던 이름을 가졌었다.
다시 돌아온 가을.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드디어. 마침내. 가난해졌고.
나는 드디어. 마침내. 투명해졌고.
나는 드디어. 마침내. 그 시절을 건너 온 것인가.
갖고 싶던 이름. 버리고 싶던 이름. 지키고 싶던 이름.
더 이상 그 이름은 나를 흔들지 않는데.
때 아닌 이 허기. 때 이른 이 추위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