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비.
비에도 스타일이 있냐고 한다면
물론 있다.
안개처럼 뿌리듯 오는 비는 별로다.
은근슬쩍 사람을 젖게 만드는 비겁한 비다.
그런 비는 종일 내려도 가슴이 답답한 것이
천식 환자처럼 호흡만 곤란해질 뿐이다.
오늘 내리는 비는
빗줄기를 굵게 했다가 잦아 들었다를 반복하면서
제대로 소리를 내며 세상을 적시고 있다.
이런 비가 좋다.
이런 빗소리는 때로 어떤 신호처럼
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굳이 따져 보자면 이주일 째 다운 다운 다운이다.
한번 어디까지 가라앉나 지켜보자는 생각이다.
새벽녘 정신을 차려보면
사각의 거실을 가로지르며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하지만 내겐 골똘히 결정 지어야할 명제도 없다.
열심히 생각해야할 어떤 화두도 없는데 마치
빨리 어떤 생각을 결론 지어야하는 사람 같이 군다.
하루에 두어 번쯤 눈앞이 잘 보이지 않고
그 간격이 조금씩 짧아진다.
이런 종류의 넋두리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건
내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저 넋두리를 늘어놓는 일이
조금이라도 내게 소용되기를 자신없이 바란다.
구멍난 배에 타고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대상없이.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대상없이. 죽어도 손해를 입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있지도 않은 상대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제기랄. 누구든 덤비면 죽여버릴테다.
담배 4갑과 타이레놀 1갑.
나의 5일치 일용할 양식이다.
지리멸렬.
사랑은 변한다.
꽃은 진다.
아이는 자란다.
나는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