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겨질 것이다.
흔한 말로 뭐가 씌였다고 하는 것 정도로 해두면 될까?
한동안 방심한 게 죄라면 죄겠지..
엄청 궁금해할 님들을 위해서 이제 오늘 있었던 엽기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일단 나의 딸 지연이와 나의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에 들어간다.
지연이는 한동안 자장가를 불러주면 입을 삐죽이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잠자는 걸 거부하는 스타일이었다.
낮잠도 자는 둥 마는 둥이고
내가 맨발로 걸을 때 발바닥이 장판에 붙었다 띄어지는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버릴 정도로 잠과는 친하지 않은 타입이다.
그리고 나?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이 비상사태에서도 새벽 네시가 넘어야
다음날에 대한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할 정도로 올빼미 체질이고
잠귀에 관해서는 거의 귀신이 따로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밝은 편.
낮잠이건 밤잠이건 잠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나 방문객을 놓쳐본 적은 거의 없을 듯 싶다.
그럼 잠시 복선격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지연이와 내가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녀오는 날.
피곤할텐데도 역시나 낮잠이라고는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이십분쯤 잔 걸로 때운 지연이는
저녁 내내 짜증과 투성을 부리더니 급기야 12시가 조금 넘자 잠이 들었다.
(참고로 평소에는 두시에만 잠들어줘도 감사할 따름..)
행복에 겨워 치니님과 오랜만에 메신저에서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칼럼에 글도 좀 올리고 거기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은희경의 소설까지 조금 읽다가
네시가 넘어서 잠을 청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다.
아침이 밝아오니 지연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우유는 꼭 침실이 아닌 다른 방에서 먹어야하는 습관 때문에
다른 방에서 우유를 먹도록 조치를 취하고(여기서 조치란 스노우맨 비디오를 틀어주는 것)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우유를 먹는 시간만큼의 달콤한 잠에 다시 들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우유를 다 먹은 지연이가 자랑이라도 하듯 우윳병을 내 앞에 들이대며 나에게로 왔다.
그러더니 내 옆에 너무 상냥하고 예쁘게 드러눕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너무 일찍 일어나 아직 몽롱한가보다 하면서
횡재라도 한 듯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헤어숍에 있었다.
거기서 미용사와 이런 저런 상의 끝에
<산뜻함>으로 컨셉을 정한 후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싹둑.. 싹둑.. 싹둑.. 싹둑'
꿈속에서도 머리를 자르는 소리가 어쩌면 이렇게
크고 분명하게 울리는 걸까 하면서 나.는.눈.을.떴.다.
순간 너무도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 머리맡에는 지연이가 가위를 양손으로 잡고 있었고
내 머리맡에는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지연이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지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엄마, 가위, 머리, 짤라쪄, 짤라쪄,"였다...
2003년 3월 27일
훗.. 지금 생각해도 끔찍, 깜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