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 정갈한 슬픔의 힘]


난 정갈한 슬픔이 지니고 있는 힘을 믿는다.

착한 슬픔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내게 결정적으로 힘이 된다.

슬픔이 지나가면서 마음속의 불순물들을 가라앉혀 주었을 때..

나는 다시 숨쉴 수 있게 되고

착한 바램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살면서 분노하게 될 때나 용기를 잃고 비겁해져 갈 때

마른 꽃줄기가 물을 빨아들이듯 한차례 슬픔이 지나가고 나면

건조해져 바스라질 것 같은 일상은 다시금 촉촉한 물기를 머금게 되고

내게는 고요하고 정직한 평화로움이 온다..


TV에서 해주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슬퍼하고 젖어들기에 바빴던 것 같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정원과 다림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몇 날을 잠 못 이루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내가 텔레비전을 켰을 때는 이미 영화는 시작되어 있었고

사랑의 예감으로 눈부시게 설레이는 다림의 대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그 때부터 나는 처치곤란 할 정도로 울수 밖에는 없었다.

설레이면 설레이는 것이 슬퍼서.. 안타까우면 안타까운 것이 슬퍼서..

또 예쁘면 너무 예쁜 것이 슬퍼서..

어쩌면 나는 요즘 내내 울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많은 걸 담고 있었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게로 스며들고 있다. 지금도 계속...

서로에게로 우산을 조금 더 기울이려는 두 사람.

정원이 해준 얘기를 혼자 곱씹으며 미소 짓던 다림.

불이 꺼진 사진관에 돌을 던지던 다림의 마음.

다림에게 쓴 편지를 전하지 않았던 정원의 마음.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안타까움.

영정사진을 다시 찍으러온 할머니의 마음과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던 그의 모습..

비디오 작동법을 적어 내려가는 정원의 눈길과 그 마음까지...


이제부터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자꾸 불순물이 끼어들어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을 때...

그 불순물들을 가라앉히고 고요해지고 싶을 때...

[어린왕자]를 책상서랍 맨 위 칸에 늘 손이 닿게 놓아두듯...

나는 내게 주는 선물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볼 것이다..


2002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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