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아다다 (외) 범우 사르비아 총서 314
계용묵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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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치 아다다(1935)


아다다는 태어나면서부터 벙어리였다. 정한 곳에 시집가기 어려웠으므로 땅을 지참금으로 묶어 보냈다. 5년간은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을 받았으나, 남편은 벙어리 아내가 슬슬 지겨워졌다. 그즈음 안동현에 건너갔던 남편이 투기 바람을 잘 타서 돈 2만원을 손에 쥔다. 첩과 함께 돌아온 남편은 아다다에게 매일같이 매를 안겨 주었고, 견디다 못한 아다다는 친정집으로 도망쳐온다. 하지만 친접집에서의 구박도 자심해 아다다는 수롱에게 도망친다. 수롱은 벙어리여도 아내가 생겨 좋았다. 둘은 바닷가로 도망치고, 수롱은 그동안 모은 돈을 아다다에게 보여주며 땅을 사서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다음 날 새벽, 아다다는 돈뭉치를 꺼내어 바닷가로 들고 나가 물 속에 훌훌 버린다. 돈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수롱이 아다다와 돈뭉치가 없어진 걸 알고 바닷가로 갔다가 아다다의 하는 양을 보고 화가 나서 아다다를 발길질한다. 아다다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병풍에 그린 닭이(1939)


아들을 낳지 못하자 시어미가 구박했고, 남편은 얼마 뒤 첩을 봤다. 답답한 여자는 바늘통을 판 밑천으로 굿판에 가서 성주님께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빈다. 하지만 밤중에 나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시어미로부터 욕을 먹고 남편이 안겨주는 매를 맞는다. 견디다 못해 엿장수 늙은이 집으로 도망가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최서방(1927)


농사를 지어 타작을 했으나 지주에게 모조리 빼앗긴 최서방은 눈물을 머금고 서간도로 떠난다


인두지주(1928)


S시 산업박람회에 간 경수는 우연히 사람거미를 구경한다. 그런데 그 사람거미가 경수를 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알고보니 거미는 한동네에서 함께 자란 창오였다. 창오는 XX탄광에서 사고가 나 두 다리를 잃고 거미의 탈을 쓰고 구경거리가 되어 돈을 벌고 있었다. 경수는 창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넌지시 권할 작정이다.


캉가루의 조상이(1939)


문보 집안은 대대로 병신이 태어났고, 자신도 그렇다. 미자가 문보를 좋아해 쫓아다니지만 문보는 불행한 유전자를 대물림하기 싫었으므로 편지를 남긴 채 도망치고 만다.


청춘도(1939)


백수나 다름없이 생활하는 '나'와 폐병으로 언제 죽을지 몰라 비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금자에 대한 초상화


붕우도(1934)


'나'와 조군은 막역한 사이지만 어떤 사건으로 틀어져 한동안 냉랭하다. 둘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싶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빤히 들여다 보이는 수싸움을 한다.


심원(1938)


한 때 큰 뜻을 품고 생활했으나 이제는 아가씨를 내세워 술장사를 하는 성재라는 사내의 이야기


마부(1939)


응팔은 마누라가 돈을 가지고 도망간 뒤로 예쁜 여자만 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이번에 착실히 모은 돈으로 행랑 영감 딸 닌네를 마누라로 얻을 작정이다. 닌네는 얼굴도 못생기고 애교도 없으니 도망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응팔의 돈을 맡아둔 행랑영감은 딴 속셈이 있다. 종 삼월이를 응팔에게 시집 보내면서 응팔의 돈을 꿀꺽할 심산인 것이다. 행랑영감이 속셈을 구체화하려고 삼월이를 자꾸 권하자 응팔은 행랑영감의 돈을 몰래 훔친다. 다음 날 경찰이 들이닥쳐 응팔이를 끌고간다.


신기루(1940)


정암은 애초에 높은 뜻을 품고 있었으나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한 술집이 잘되자 마음이 바뀐다. 폐병에 걸린 하루코를 혹사시켜 돈을 우려내는가 하면, 한군에게 제공하기로 한 자금도 구차한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어느 날 왕가를 따라 여자를 사러 간 정암은 도적떼에게 붙들려 돈을 모두 날린다. 정암은 왕가가 어찌 자기에게 이럴 수 있는가 분개하다가, 자신이 한군에게 한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시골노파(1941)


서울 구경온 시골 노파는 삶을 꾸려가는 일로 몸을 수고롭게 하는 것을 왜 부끄러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묘예(1941)


아들이 장성하고 손주가 무럭무럭 자라남에 따라 할아버지는 갈수록 쇠약해진다. 손주가 처음으로 일어설 때 호미를 들고 일어서자, 할아버지는 손주가 장차 농군이 되어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는 생각에 대견해 어쩔 줄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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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난 계용묵의 본명은 하태용으로 조부로 부터 한학을 배웠고 열다섯이 된 해에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0년 소년잡지 현상문예에 공모한 시가 2등으로 당선된 뒤 1921년 상경하여 김억,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들과 잠시 교우한다. 중동학교, 휘문고보 등에서 잠시 수학하지만 조부의 반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 때 4년간 독서에 매진한다.

1924년 시 <봄이 왔네>가 <생장>지 현상에 당선, 단편소설 상환이 <조선문단>에 당선된 뒤 <최서방>, <인두지주>와 같은 경향성을 띤 소설을 발표한다. 일본 동양대학에서 잠시 수학하던 계용묵은 집안이 몰락하자 귀국한 뒤 기존의 작품과는 성향이 다른 <백치 아다다>를 1935년에 발표한다. 이 작품을 필두로 작가는 인생파적 경향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애욕과 물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계용묵은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된 뒤 석방된 후 같은 해 12월 방송국에 취직하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를 이유로 3일만에 퇴직하고 만다.

1945년에는 정비석과 종합잡지 <대조(大潮)> 창간, 1948년에는 김억과 출판사 수선사(首善社) 창립, 1952년 월간 <신문화> 창간 등 작품활동과 출판활동을 병행하던 작가는 1961년 58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한다.


계용묵 소설의 주인공들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잘못 된 결론으로 치닫거나 상황을 회피한다. <백치 아다다>는 돈을 바닷가에 버렸다가 연인의 한 발길질로 죽음에 이르고, <병풍에 그린 닭이>의 주인공은 실컷 매를 맞고 도망쳤다가 인습에 얽메어 제 발로 집에 돌아온다. <최서방>은 지주에게 대들지 못하고 서간도행을 택하고, <캉가루의 조상이>의 문보 역시 편지 한 장 남겨둔 채 도망친다. <마부>의 응팔은 어떤가?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지 못해 도둑질을 했다가 쇠고랑을 찬다.

계용묵의 소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민중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삶의 질곡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다소 가학적인 성향의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수동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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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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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늘의 계절>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 <동기>에는 2000년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 단편부문 수상작 <동기>를 비롯하여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동기>는 커리어 출신 경찰 가이세 마사유키가 곤경에 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이세는 일선 경찰들이 경찰수첩을 항시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압박감을 덜어주기 위해 '경찰수첩 일괄보관 제도'를 기안하고, 다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행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제도 시행직후 경찰수첩이 통째로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가이세는 상급자와 반대론자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좌천될 위기에 처한다. 유력한 용의자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마스카와.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기엔 너무나 태연한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하나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른 죄를 저지르는 내용은 그다지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긴장감에 있어서는 <역전의 여름>이 단연 압권이다. 주인공 야마모토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여고생과 정사를 나눈 직후 여고생이 돈을 요구해와 투닥거리다 실수로 살해하는 바람에 살인자가 되고 만다. 복역기간을 성실히 마친 뒤 사회에 복귀하려고 애를 쓰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내 시즈에와 아들 역시 야마모토를 백안시한다. 그에게 남은 한 가닥 희망은 돈을 벌어 시즈에에게 보내는 일.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이 겪었던 일과 매우 흡사한 일로 곤경을 겪는 한 남자의 살인청부. 그 남자는 끊임없이 돈을 보내오고, 마침내 야마모토는 남자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거액의 돈을 시즈에에게 보내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살인하는 대목만은 시나리오를 변경하기로 한 야마모토. 하지만 정해진 장소로 간 야마모토는 오히려 칼에 찔리고 마는데... 전화를 걸어 살인청부를 의뢰하고 돈을 보내온 남자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궁금증은 증폭된다.


소품 느낌의 <취재원>은 특종경쟁에 매몰되어 거짓 보도를 서슴지 않는 언론과, 출세욕에 눈이 먼 기자의 이야기이다. 소품 느낌이지만 심리 묘사는 쓸만하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밀실의 사람>은 재판 중 졸다가 아내의 이름을 부른 재판장의 이야기이다. 깜빡 졸았을 뿐인 그의 행동이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졸았던 이유는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누가 왜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였을까?


신문기자로 활약하다가 미스터리 작가로 전향한 요코야마 히데오는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 <동기>와 <역전의 여름>은 TV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나오키상 심사위원들이 '현실성' 문제를 제기하며 낙선시키자, 나오키상 보이코트를 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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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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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거저나 마찬가지>는 솔직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때 공장에 위장취업 하여 노동자들을 의식화하는 데 신명을 바쳤던 선배가, 시대가 바뀌니 기득권으로 편입된다. 그 선배가 '나'에게 '거저나 마찬가지'로 집을 빌려주더니, 나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착취하고 급기야 '나'의 존재 가치마저 망각한 채 종 부리듯 한다. '거저 근성'을 고치는 것, 그것이 곧 자존감을 되찾는 출발점이다.


조성기의 <작은 인간>은 두 이야기가 교차한다. 문단의 주류인 남성 소설가와 이제 문단에 발을 디딘 신진 여성 소설가가 불륜관계에 빠져든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의 막간을 '전족' 이야기가 채우고 있는데 사뭇 흥미롭다. 특정 신체 부위에 집착하는 '패티시'와 사상에 족쇄를 채우는 '전족'. 어딘지 닮은 부분이 있다.


이혜경의 <피아간>은 도식적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장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 큰아들, 그리고 대척점에 놓여있는 새어머니와 여자인 '나'. 브레히트가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통해 제기한 핏줄 문제는 매번 흥미롭다.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재기발랄하다.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내려오자 전쟁이 난 것으로 오인한 주인공이 편집증적인 아버지가 만든 땅굴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흙맛을 본 뒤 매료되어 흙만 먹고 살게 되고, 그 흙맛을 배고픈 소녀에게도 전수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이다. 디자인 회사를 차려서 생계를 잇는데 급급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라디오를 디자인하는 내용인데 발상도 신선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다. 시각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문학이 전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작품 중에 재미난 내용이 있어 적어본다.


'예술은 집에 가서 하고 회사에서는 디자인을 해라'... 예술은 일종의 진창과 같아서 한번 발이 빠지게 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참 진창을 허우적거리다보면 나중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인지 자위행위인지도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온몸에 흙탕물이 묻어 있어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예술은 집에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집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은 불만족스럽다. 한때 촉망받던 예술가, 그러나 더 뛰어난 천재의 등장. 아내의 외도(혹은 남자의 상상). 우연한 사건으로 인한 몰락. 너무나 도식적이다. 어딘지 모르게 김영하의 단편 <이사>가 연상된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는 방식이 특이하다. 김애란의 작품은 초기작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천연덕스러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최근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 윤대녕의 <탱자>,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도 실려 있는데,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터라 건너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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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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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은 조세핀 테이가 1951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침대탐정의 역사사건 탐험'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상해를 입어 병원에 입원한 글랜트 경감에게 연인 마타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마타는 글랜트가 무료할 것을 걱정하여 여러가지 초상화를 가져다 주는데, 그 초상화 가운데 리처드 3세의 것이 있었다.

리처드 3세는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 형 에드워드 4세가 급사하자 조카들을 살해한 뒤 왕위를 공고히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고, 교과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글랜트 경감은 초상화를 보고 어쩐지 리처드 3세가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한 인물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방문객들에게 역사책을 청해 읽으며 사건을 재구성하던 글랜트 경감은 마침내 리처드 3세가 조카들을 잔인하게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과, 후세의 역사가들이(거기엔 토머스 모어도 포함된다) 헨리 7세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리처드 3세를 부당하게 대접했다는 것을 밝혀낸다.


물론, 리처드 3세가 누명을 썼을 수 있다는 가설을 조세핀 테이가 최초로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탐정이 역사적인 사건에 개입하여 추리를 펼쳐나간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나 참신한 설정이었다.  탐정소설 평론가 앤소니 버우처는 <진리는 시간의 딸>이 그해 나온 미스터리 소설 중 으뜸이라고 평가했고, 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이러한 설정을 이용하여 '진리란 단선적이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명제를 부각시키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작가는 씌여진 역사책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는데, 이러한 작가의 의견은 글랜트의 조수역을 자처한 캘러다인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진실은 이야기에 없고 회계장부에 있도다... 진정한 역사는, 역사로 씌여진 것 가운데는 없습니다. 옷값 계산서 속에, 왕실 내정비 속에, 개인의 편지 속에, 재산 목록 속에 있습니다.


역사책은 당대의 권력구도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으므로, 실증적인 사료에 의해야 한다는 입장이 잘 드러난 말이다.


<건망증 있는 사람들(The Absent-Minded Coterie)>는 로버트 바가 1906년 발표한 단편집 <유제느 발몽의 승리(The Triumphs of Eugene Valmon)>에 수록된 단편이다. 건망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할부판매를 한 뒤 할부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하여 돈을 수금하는 악당의 이야기인데, 주인공 유제느 발몽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악당에게 당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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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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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안한 이름의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흰두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카톨릭식 이름의 잡탕)는 퀴즈쇼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의 첫회에 우승한 뒤 곧바로 구속된다. 프로그램 제작자와 경찰은 슬럼가의 일자무식 웨이터가 전문가들도 맞추기 힘든 열 두문제를 연속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뭔가 속임수를 썼음에 틀림없다는 판단을 했다. 비아냥과 고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지옥을 경험하던 람 모하마드 토마스 앞에 스미타 샤라는 변호사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데,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자신이 문제를 맞출 수 있었던 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1.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는?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고아원 시절부터 함께했던 절친 살림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아르만 알리였고, 살림을 따라서 열심히 영화관을 들락거린 덕분에 정답을 맞춘다. 정답은 배신.


2. 십자가에는 어떤 글자가 세겨져 있을까요?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버려진 곳이 성당이었다. 그곳에서 매일같이 보던 글자가 바로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 였다.


3.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작은 행성은 무엇입니까?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공동주택에 살던 시절에, 옆 방에는 한 때 천문학자였던 샨타람이 살았다. 그는 자신의 딸 구디야를 사랑했지만, 알코올의 마력에 굴복하여 나중에는 딸을 학대하기에 이른다. 구디야는 펄펄 끓는 찻물을 뒤집어 쓴다. 어쨌든 샨타람 덕분에 그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명왕성>


4. 맹인 시인 수르다스는 어떤 신을 찬송했습니까?

람과 샬림은 마만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끌려가 하마터면 장애인이 될 뻔 했다. 샬림은 목소리가 고왔기 때문에 노래를 많이 배웠고, 덕분에 람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크리슈나>


5. 정부는 다른 나라의 외교관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람은 한 때 호주에서 온 테일러 부부의 집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지낸 적이 있었다. 테일러는 첩보영화에 미친 편집광이었는데, 온 집안에 CCTV를 설치해둔 자였다. 어쨌든 그때의 경험으로 람은 답을 맞춘다. <용납할 수 없는 외교관>


6. 파푸아 뉴기니의 수도는 어디입니까?

람이 바텐더 하던 시절, 부두교를 신봉하는 아내와 결혼한 사업가를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통해 답을 맞추는데, 정답은 <포트 모레스비>이다.


7. 회전식 연발 권총 리볼버는 우가 발명했는가?

람은 기차 강도를 만난 적이 있고, 그 때 콜트 권총을 만져보게 된다. 정답은 <새뮤얼 콜트>


8. 인도 육군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은 무엇입니까?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람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방공호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퇴역군인을 만나는데, 사실 그는 겁쟁이였지만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떠벌렸다. 정답은 <파람 비르 차크라>


9. 인도 최고의 타자 사친 말반카르는 100점대를 몇 번이나 기록했습니까?

샬림은 한때 아흐메드라는 살인청부업자의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그의 취미가 크리켓 경기 관람이었다. 정답은 서른 여섯번. 샬림은 기지를 발휘해 사진을 바꿔침으로서 아흐메드가 마만을 살해하도록 하는데 성공.


10. 비극의 여왕 닐리마 쿠마리는 여우 주연상을 언제 받았습니까?

람은 닐리마 쿠마리의 쓸쓸한 노년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녀는 애인에게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살한다. 정답은 <1985년>


11.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코스터드라는 인물은 어디에 나옵니까?

람이 곤란에 처했을 때 도와준 친구가 샹카르이다. 샹카르 덕에 거처가 생긴 람은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타지마할에서 관광안내원 노릇을 해서 먹고 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었기 때문에 인심도 얻는다. 이 시절 창녀 니타와 알게 된다.

얼마 후 샹카르가 공수병에 걸려 죽는다. 샹카르를 구할 돈을 마련하지 못한 람은 그가 사실은 공동주택의 주인이자 왕족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운명의 비극성에 절규한다. 

데비 공주의 돈을 훔친 람은 니타라도 구해내려 하지만, 니타는 가정마다 딸 하나를 창녀로 만드는 인습 베드니의 희생자로서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40만 루피를 병원에서 만난 불쌍한 영어교사에게 주어 아들을 구할 수 있도록 해준 람은 이제 '우정의 힌트'를 쓰기로 한다. 전화를 받은 영어교사의 도움으로 람은 정답을 맞춘다. <사랑의 헛수고>


12. 뭄타즈 마할의 아버지 이름은?

람은 타지마할 안내원이었다. <아사프 자>


13.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작품번호 106번으로 '헤머클라비어 소나타'로도 알려진 곡의 조는?

프렘 쿠마르는 12번 문제를 장난이었다고 얼버무린다. 잠시 막간에 화장실에 간 프렘 쿠마르에게 람은 권총을 겨눈다. 프렘 쿠마르는 닐리마 쿠마리를 학대했고, 창녀 니타의 얼굴을 짓이겨놓은 쓰레기였다. 람은 오직 프렘 쿠마르에게 복수하기 위한 일념으로 퀴즈쇼에 참석한 것 뿐이었는데, 운이 좋아 문제들을 맞췄던 것이다. 프렘 쿠마르는 람에게 싹싹 빌며 정답을 알려준다. <B플랫 장조>


변호사 스미타 샤 덕분에 람은 풀려난 뒤 상금을 받는다. 스미타 샤가 사실은 구디아였다.

퀴즈쇼는 파산했고, 프렘 쿠마르는 이개월 전 사망했다. 표면적으론 자살이었지만, 퀴즈쇼와 연관된 조직폭력배들의 소행일지도 몰랐다. 경찰들이 마만이 운영했던 고레가온을 급습해 장애아들을 풀어주었다. 샬림은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물론 제작자는 람이었다)

람은 니타와 결혼한다.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릴 때, 람은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2009년 아카데미 8개 부문 석권, 2009 골든글로브 4개 부문 석권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소설로, 소설 역시 2007 파리 도서전 독자상과 2006 남아프리카 부커상을 수상했다. 처음엔 <Q&A>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영화가 인기를 얻자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재출간 된다.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퀴즈쇼의 질문과 연관을 갖고 이어지는데, 짤막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도사회의 인습과 고질적인 병폐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6인의 용의자>도 샀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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